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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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대권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괴한에 의해 피습당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뉴스를 뒤덮었다. 범인은 60대 남성으로, ‘내가 이재명이다’라고 쓰인 파란색 왕관을 쓴 채 마치 열성 지지자인 것처럼 이 대표에게 접근해 손수 개조한 흉기를 휘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고 수술 경과도 좋아 회복 중이라 하니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이는 정치가 아닌 인류애의 보편적 감정에 기인한 것으로, 소위 여의도 정치권도 같은 마음일 테다. 이제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이 죗값을 제대로 치르기를 고대하며, 남은 수사와 이후 이어질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 수사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단독 범행이 유력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제1야당 대표의 생명을 노린 범행임에도 그 수법이나 행태가 지극히 단순한 점에 미뤄 거대 조직이 배후에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듯싶다.

여기에 범인이 남긴 ‘변명문’에서 과거 정부와 이 대표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함께 ‘역사적 사명’ 등을 운운한 걸 보면 범인은 자신의 그릇된 신념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확신범에 불과하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다니는 늑대처럼 조직이나 배후 없이 정치·사회에 대한 불만을 폭력적 방법으로 표출하는 ‘고독한 늑대’형 테러인 것이다.

민주화 이후 유력 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살펴보면, 200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커터칼 피습이나 2022년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망치 피습 모두 개인의 단독 범행이었다. 당시에도 배후론과 자작극 같은 음모론이 판을 쳤지만 모두 사실무근이었다.

여기까지가 뉴스 사회면에서 다룰 법한 내용이다. 물론 범행 동기가 어떠한지 여부도 관심사겠지만, 사람을 살해하고자 칼을 내리꽂은 범인에게 그럴듯한 범행 동기가 있을 리 만무하고, 만약 있다고 해도 이는 뻔뻔한 변명일 뿐 어떤 가치를 부여하긴 어렵다. 요새 표현으로 한다면, 네가 어떤 이유로 이따위 범죄를 저질렀는지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다.

그런데 이 뉴스가 사회면을 벗어나 정치면, 특히 정치 유사 언론 쪽으로 넘어오니 갑자기 이런저런 내용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거물 정치인 피습이라는 역대급 뉴스에 정치를 빼놓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여러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며 배후론부터 자작극까지 각종 음모론이 판을 치는 일부 행태들을 보면, 황당함 그 자체이다. 특히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 던진 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응대하는 일부 유사 언론의 행태는 극단적 진영논리에 편승해 조회 수를 늘리고자 벌이는 무책임의 극치로, 국민뿐 아니라 심지어 피해자에게도 하등 민폐일 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무엇보다 이런 파렴치한 범죄를 ‘테러는 민주주의 적’이라고 해서 범인을 마치 민주주의를 해치는 대단한 범죄자인 듯 표현한 것 역시 과도한 해석이다. 범인은 그저 정치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불만으로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른 악인일 뿐, 그것이 어떤 이유라도 민주주의라는 고귀한 이름이 붙을 자격은 없다.

그럼에도 여기에 온갖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다 보니 일부에서는 이를 상대 정당이나 진영을 비난하는 구실로 삼으며 극단적 진영 대립을 부추기는 지경까지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누구도 아닌 범인이 가장 원하는 바다.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 이슈가 되는 것을 넘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들의 여론에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는 것이다.

광주에서 40대 남성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살해한다는 글을 올려 체포된 일이 단적인 예다. 이미 이번 범행이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쳐 모방범까지 나타난 셈이다.

결국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 정치적 목적 운운하며 대의명분 따위를 붙여 줄 필요는 없다. 어쩌면 범인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고, 그의 범행에 대해 ‘무가치’하다며 평가절하해 무시해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한 개인의 비열한 범죄를 두고 당장이라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극단주의 정치꾼들이 이를 기회 삼아 음모론을 설파하며 서로를 헐뜯는 작금의 현실은 어쩐지 민주주의 후퇴를 보는 듯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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