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겨울녘 필자의 작은 농갓집에 딸린 고추·배추·깨 심은 밭이 단단히 얼어붙어 황량과 을씨년을 불러온다. 그래도 봄을 기다리며 이리저리 밟고 다니다가 "이 고마운 땅에 겨우내 무엇을 해야지?"라고 자문하고 답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들르는 동네 행정복지센터 대중목욕탕 역시 작은 힐링이 된다. 단돈 1천 원에 작지만 아주 깨끗한 곳이다. 눈여겨보게 된 부분은 이용 주민 대부분이 자기가 사용한 욕실 안 작은 의자나 대야를 사용 후 깨끗이 씻어 구석 어딘가 자리에 포개 놓고 가는 점이다. 탈의실에서도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수시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루걸레로 닦아 낸다. 아주 자연스럽지만 그런 내용의 메시지 하나 붙지 않았다. 누가 보지 않아도 지키는 공중(公衆) 속 사적 떳떳함과 자존감, 작은 규율이었다. 

테드(TED)에서 ‘이타이 탈감’의 ‘지휘하지 않고 지휘하기’라는 맥락의 강연을 들으면 마지막 부분에 정말로 그 최고 마에스트로는 눈을 감고 팔장을 낀 채 지휘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연주자) 모두를 믿고 맡기는 그의 동작은 많은 점을 시사했다. 

얼마 전 국내 유명 기관 컨소시엄에서 ESG 관련 대상 기업을 선정하며 그 기준으로 우리에게 맞는 ESG 평가모델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기업이 속한 산업별 평가지표를 다르게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소속 업종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이 함께 개발한 글로벌산업 분류기준(GICS)에 따라 구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은 GICS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워 자체 기준에 따라 사회간접자본, 소비자서비스, 금융, 행정서비스 등으로 업종을 구분했다. 민간부문 역시 기본 가중치를 다르게 조정해 평가한다고 발표했다. 공공부문 평가지표 98개, 민간부문 128개다.

엄청난 발전이고 새로운 창출이지만 업종별 가중치 차별화 평가는 여전히 문제다. 균형만 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중소기업 대표는 신년 인사 차 점심 약속에 손도 씻지 못하고 나왔다며 악수는 나중에 하자며 화장실로 먼저 향했다. 그 제조업체 대표는 CEO아카데미를 열었으며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친다. 그런데도 일을 하는 게 아닌 일의 주변을 살피고 정리만 하는 데도 이런 식의 이미지가 던져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평가 이전에 존재 자체가 수익이며 평판이고 지속가능성을 열어 둬야 하는 것이다.

스탠더드앤푸어스나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은 자본시장의 눈과 귀로 무장한 기관이다. 아무리 정교하고 합리적 평가기준을 제시한다 해도 그 전에 먼저 답을 해야 할 질문이 있다. 지구환경 재앙이 지금 일어서는 후진적 상황의 귀책 사유인가?

우리나라 경우 범위를 아주 좁히더라도 시스템화된 각종 ‘인증’이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비용 개선과 경쟁력 같은 문제들을 내재화된 과제 해결로 제시한다. 이미 많은 현장은 폐기물, 에너지, 환경유해, 탄소배출을 인지하고 조정하며 진중한 접근을 한다. ESG 실천 철학은 이미 공유된 셈이다(enough already). 

다음으로 자본시장 무한 경쟁이 가져온 사회적 책임은 근원적으로 세계사적 가치에서 시작점을 고찰해야 한다. 중대재해, 사업장 안전사고, 예방 시스템부터 인권에 관한 문제까지 CEO들은 기업 경쟁력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지배구조 역시 단순하게 그려 보면 된다. 부패방지경영, 김영란법, 준법경영, 리스크 관리 등 이미 도출되고 검증된 내용들을 적재적소, 적기에 적용하면 된다.

책임과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을 경영해 나가라는 사회적 합의이며, 그 가치는 선한 영향력으로 다른 영역에도 보이지 않게 전달되고 뿌리내리면 된다. 정도경영은 규모에 상관없이 직원들 정서적 건강을 위해 시간과 비용, 인력을 투자해 기업을 경영해 나간다. 이는 고객, 사회에 대한 CEO의 숙명이다.

새해 새로운 목표를 다짐하고 공유하며 더 나은 성장과 발전을 다짐하는 행사들이 여기저기에서 열린다. 심각한 수준의 지구환경 훼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고, 공동선을 이루는 사회적 가치 역시 지키고 확장시켜 가야 할 이슈다. 사회적 합의정신이 좀 더 선하게 상호작용하는 룰을 이해하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주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나눔과 배려의 성숙함이다.

중소기업에 지배구조 운운도 과잉이지만 정도경영은 CEO의 경영철학으로 이해하면 쉽게 문이 열린다. 중소기업 경영은 열심히 살며 지휘하고 발전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 일이라고 본다. 누가 보지 않아도 지켜지는 시골 동네 작은 목욕탕의 아름다운 자율적 상호작용(규율)은 ESG에 대한 현실감각을 충분히 일깨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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