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 세계는 선과 악이 분명하고, 원인과 결과가 선명하며, 결국 모든 일은 옳게 잘 돌아가는 완벽한 세상이었다. 그러니 착하고 바르게만 살면 분명히 복을 받는다고 했다. 산타 할아버지를 믿듯이 동화 속 세계관을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아동기를 지나면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닌 무수한 회색으로 이뤄졌음을 눈뜨게 된다. 

성장을 거듭하며 우리는 자신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감당해야 하는 인생의 무게는 어쩌면 살아있음을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난관과 고통이 없는, 기쁘고 행복하며 평안하기만 한 삶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무게가 감당할 임계치를 훨씬 넘어서면 문제가 발생한다. 속절없이 몰아치는 비극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몬스터 콜’은 자기 앞의 생이 너무도 버거운 열두 살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을 직시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코너 오말리는 요즘 아이답지 않다. 시키지 않아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침을 알아서 챙겨 먹고, 빨래도 돌리는 등 손이 가지 않는 사내아이다. 이 정도면 상을 받아 마땅하지만, 코너는 매일이 지옥 같은 삶을 산다. 불치병에 걸린 엄마는 나날이 병세가 악화되고, 이혼한 아버지는 미국에서 새 가족을 꾸려 산다. 자신과 아픈 엄마를 돌보러 오는 외할머니와는 성격이 상극이라 만날 때마다 부딪힌다. 학교생활 또한 녹록지 않다.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하고 욕을 먹지만 어째서인지 코너는 저항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등 폭행을 멈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 코너는 자신이 벌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매일 꾸는 악몽 때문이다. 코너는 절벽에 매달린 엄마 구조에 실패하는 꿈을 반복해서 꿨다. 살기 위해 자신의 손을 필사적으로 잡은 엄마를 코너 역시 전력을 다해 붙잡았지만 언제나 마지막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손을 놓아 버렸다. 그 악몽은 코너에게 커다란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사실 코너는 엄마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토록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차라리 빨리 끝나 버리길 바랐다. 열두 살, 아직은 어린 코너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이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이 종결되길 바라는 양가감정이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 코너는 상상 속 괴물을 불러냈다. 몬스터는 선악이 분명하지 않는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코너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덮어 둔 상처를 직시하게 한다. 마침내 코너는 진실을 외면한 공허한 말 대신 진심을 전하며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영화 ‘몬스터 콜’은 엄마의 죽음을 앞둔 소년이 현실을 바라보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통해 고통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을 은유한다. 뚜렷한 원인도 없이 찾아오는 삶의 비극 앞에서 그것을 부정하거나 비관하는 대신 용기 내어 고통을 직시하는 것. 그리고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삶을 실천하는 것만이 고통을 딛고 나아가 성장하는 길임을 영화 ‘몬스터 콜’은 섬세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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