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새해가 되면 누구나 행복을 기원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새해 첫날밤 꿈에 의미를 부여하며 해몽도 한다.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그의 유명 저서인 「꿈의 해석」에서 꿈은 마음속 무의식적인 요소가 잠을 자는 동안 표출되는 것이며, 따라서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꿈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무의식적 내용과 현실 세계 내용들이 마음속 과정을 통해 변형돼 꿈으로 드러난다. 또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꿈에서라도 이루고 싶은 소망을 갖기도 한다.

조선 중기 기생이었던 황진이(黃眞伊, 1506~1567)의 한시 중 만날 수 없었던 님을 그리며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낸 시가 있다. 

그녀는 개성(開城)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서녀였다. 아버지는 황 씨 성을 가진 양반으로 일설에는 진사였다고도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기생 또는 천민 출신으로 누구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아마도 ‘진현금(陳玄琴)’이라고 불리던 시각장애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황진이의 다른 이름은 진랑(眞娘)이었고, 기생 이름인 명월(明月)로도 알려졌다. 거문고를 잘 탔고 노래에도 능했다고 한다. 또 성리학적 학문 지식이 해박했으며 시를 잘 지었고, 자유분방하고 자존심이 강했다고 한다.

많은 선비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전국을 유람하기도 하고, 그 가운데 많은 시와 그림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송도기이(松都記異)」 기록에 따르면 황진이는 "기적에 몸을 담았으나 성품이 고결해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관부의 주석(酒席)이라 할지라도 머리 빗고 세수할 뿐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소월의 스승이자 수많은 시와 번역시를 남긴 초기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던 김억이 그녀의 한시를 번역해 발표했고, 김성태(1910~2012)는 1946년 김억의 또 다른 번역시인 ‘동심초’를 음악으로 작곡한 후 1950년 ‘꿈’이라는 제목의 가곡이 돼 현대인의 사랑을 받는다.

1944년 나온 그의 한국 여류 한시 번역 시집 「꽃다발」에 처음 소개된 원시(原詩)엔 제목이 없었으나 후에 ‘상사몽(相思夢)’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상사몽이란 남녀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사모해 꾸는 꿈을 말한다.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농訪歡時歡訪농 (농방환시환방농)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꿈길밖에 길 없는 우리의 신세 /님 찾으니 그님은 날 찾앗고야.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路中)에서 만나를 지고.

첫 번역은 기생이었던 황진이의 신분을 의식했던지 ‘꿈밖에 길 없는 우리의 신세’라고 했으나, 5년 후인 1949년에 나온 김억의 번역 시집 「옥잠화」에서는 원시 번역이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로 바뀐다.

한번 떠난 임은 소식이 없고 꿈에서나 만나려고 찾아가면 그 임도 날 찾아갔다고 한다. 

다음에는 엇갈리지 말고 동시에 출발해서 도중에서 만나자고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그녀의 가슴속에 담겼던 깊은 한(恨)을 풀어낸 것이리라.

풍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황진이가 그리워했던 남자는 누구였을까.

예년과 마찬가지로 갑진년 새해에도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 유무와 상관없이 계속 꿈을 꾸며 시작한다.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소망과 계획도 달라지지만, 이번 새해에도 올해를 위한 새로운 ‘꿈’을 꾸며 희망을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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