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새해 즈음, 다소 겨울 같지 않은 날씨에 비해 눈이 자주 내렸다. 세상 모든 어두움을 황급히 덮어 버리려는 듯 함박눈이 서설(瑞雪)이 되곤 했다. 온 땅이 눈으로 덮일 때 길은 사라진다. 그러할 때, "차마 내 발이 더럽혀 놓을까 봐 지나지 않고 그냥 두고 보았다"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조선조 후기 시대 시인이며 문신(文臣)이었던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눈을 뚫고 들길을 가노니/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자/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뒷사람이 밟고 간 길이 될 테니"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애송시였다고 한다.

이처럼 길을 처음 내는 사람을 우리는 선구자, 개척자라고 한다. 그리스어 ‘아르케고스(archegos)’가 바로 그러한 말이다.

고대 위험한 지중해 항해에서 배가 난파 위기에 처하면 수영을 가장 잘하는 선원, 곧 ‘아르케고스’가 허리에 밧줄을 매고 바다로 뛰어들어 배를 안전하게 해안에 접안시키는 일을 담당한 데서 유래했다. 그 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대신 싸워 전리품을 전달하는 사람, 즉 민족이나 나라의 창시자, 기원(起源) 자, 최고지도자로 의미가 확대됐다.

이러한 예를 대항해시대를 개척한 포르트갈과 스페인에서 볼 수 있다.

고대 유럽인들은 지브롤터해협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불리는 두 개의 바위기둥이 있는데 이를 ‘전진금지선(前進禁止線)’, 즉 바다가 끝나는 곳인 ‘Non Plus Ultra’라고 불렀다. 

그러나 15∼16세기 포르투갈의 항해 왕 엔리케(1415∼1460)왕자와 스페인, 곧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5세(1500∼1558)는 ‘전진금지선을 넘는(Plus Ultra)’ ‘발견과 대항해시대’를 개척해 중세 후반까지 지중해의 가난하고 작은 변방인 포르투갈을 해상강국으로, 이를 뒤이은 스페인을 신대륙을 지배하는 강대국가로 만들었다.

이와는 달리 해양강국이었던 명나라 황제들은 아프리카 모잠비크해협까지 항해했던 정화(鄭和)함대에 1433년 이후 지원을 중단했다. 이후 선박 금지는 물론 항해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없애기 위해 귀중한 자료를 불태워 버렸을 뿐 아니라, 1525년에는 해양을 항해하는 선박을 부수고 선주를 감금하는 조치와 무역선(貿易船)을 범죄로 다스린 것은 농경사회를 지향하는 대륙국가의 한계를 보여 줬다. 15∼16세기에 명나라의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과연 포르투갈의 동방 항해가 가능했을까?

이러한 역사의 교훈 때문인지, 지금 중국은 국제법을 무력화시키며 남지나해에 인공 섬을 만들어 해양패권을 주도할 뿐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패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반 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인 제1·제2도련선을 설정했다.

한편, 시진핑 시대에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추진이라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으로 관계국을 채무불이행 국가로 전락시키고 자국 경제에 타격을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길을 만드는 사람들인 지도자가 갖춰야 할 품격과 요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그가 내딛는 첫 발자국은 깨끗해야 한다. 아무도 거짓과 위선과 비리와 선동으로 더러워진 길을 함께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외교, 안보, 국방력을 강화해 전쟁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도할 사명감과 비전을 겸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안전한 포구로 이끄는 ‘선한 길 안내자’가 돼야 한다.

이제 4월이면 총선이 다가온다. 우리뿐 아니라 며칠 후면 타이완 총통을 뽑고 3월에는 러시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다.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동 전쟁, 타이완 문제가 우리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민주주의 꽃은 선거를 통해 이룬다고 한다. 그런데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선택이 이념이나 체제 논쟁에 함몰돼 올바른 지도자를 뽑지 못한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될 것이다. 국민 수준이 국가 운명을 결정하기에 국민 각자가 깨어 있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2024년 출발점에서 우리 모두 개인과 가정, 사회, 국가공동체가 올바른 좌표로 진입해 인류보편적 가치를 한껏 누리는 한 해가 되도록 함께 길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희망을 찾아 이를 구현시키는 개척자요, 선구자이자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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