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무녀리’란 문을 열고 나왔다는 ‘문(門)열이’가 변한 말로, 포유동물의 한 태(胎)에서 나온 여러 마리 새끼 중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나온 ‘맏이 새끼’를 의미한다.  

옛사람들은 처음 문을 열고 나오느라 많은 힘을 소진, 다른 새끼들에게 떼밀려 어미젖을 제대로 먹지 못해 약하고 처진다고 생각했다. 막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의 젖꼭지를 먼저 차지하려고 힘겨루기를 하는데, 맏이 새끼는 힘이 달려 다른 동생들에게 어미젖을 빼앗기고 뒤로 처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맏이인 ‘문열이’는 점점 더 다른 동생들보다 초라한 못난이 무녀리가 되는 것이다. 이에 빗대어 여러 사람 중 모자라는 사람이나 약한 사람을 ‘무녀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요즘 치솟는 물가로 농작물 가격이 무척 올라 가격이 저렴한 못난이 과일, 못난이 채소가 덩달아 인기라고 한다. 그런데 똑같은 가격에도 못난이 과일을 사는 배려의 마음이 듬뿍 담긴 감동 사연도 있다.

어느 마을 길모퉁이에 한 과일 행상이 있었다. 몸을 다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손수레를 마련해 마을 어귀에서 과일 행상을 하게 됐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다가와 "이 사과 얼마예요?"라고 물었다. "예! 1천 원에 두 개 드립니다"라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3천 원을 내고 사과를 골랐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작고 못생기거나 약간 상처가 난 사과 여섯 개를 골라 담았다. 과일 행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참으로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그 사람이 또 와서는 그전처럼 똑같이 못난이 사과만 골라 갔다. 그 사람이 세 번째 오던 날, 행상이 조심스럽게 "손님,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고르시지요"라고 말했다. 손님은 그저 웃는 얼굴로 여전히 작고 시들고 못생긴 사과를 고르며 "내가 이런 것만 골라 가야 남은 사과 하나라도 더 파시죠. 저도 어렵게 사는데 댁은 더 어려워 보여서요. 아저씨. 그래도 힘내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행상은 숨이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도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구나! 그래서 세상은 굴러가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사과 봉지를 들고 돌아서 가는 그 손님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한 태에서 여럿이 태어나지는 않지만 여러 자식 중에는 무녀리 자식이 있게 마련이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똑같이 깨물어도 더 아픈 게 무녀리 자식이다. 그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더 애틋하고, 잘난 자식이 모두 고향을 등져도 끝까지 떠나지 않고 고향에서 부모를 모시는 이도 무녀리 자식이다.

작은 돌멩이가 모여 아름다운 탑이 되고, 벽돌이 모여 웅장한 건축물이 된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경이로운 대자연을 이룬다. 큰 것만 생각하다가는 작지만 소중한 근본을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멸시하는 작은 생명체 하나라도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다.

모자라거나 작은 것들, 여린 것들은 언제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한때는 갓 태어난 연약한 못난이 ‘무녀리’였다. 어리고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는 무녀리는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제때 제대로 자라지 못한 무녀리들은 뒤처졌던 자신의 그 결핍과 불완전을 에너지로 삼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극복하고 위대하게 산 못난이 ‘무녀리들’의 삶은 진정 아름답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