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장기간 세계 최고 자살률을 기록하는 대한민국, 그중에는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활짝 피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 그들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도 가혹하다. 

매년 늘어가는 학교 밖 청소년은 최근 한 해만도 5만2천 명 넘게 배출됐다. 2023년도는 고등학교 자퇴생 증가와 대입 N수생 증가가 폭발적이었다. 그들이 한창 배움에 갈증을 느끼고 꿈과 소질을 계발하려는 목표 외에 무엇이 그들을 자퇴와 생의 종말로 이끄는가? 청소년들의 힘겨운 ‘인생나기’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평등지향 사회’로 ‘계급 탄력성’이 강한 편이다. 예컨대 과거 한국의 대통령들을 보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특성화고(상고) 출신이다. 과거는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를 잘하는 뛰어난 학생들이 상고에 진학했다. 이는 곧 대한민국은 가난한 집안의 자식도 대통령이 되는 나라, 즉 최하층이 최상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나라로 정치적 탄력성이 매우 큰 나라다. 세습신분사회의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평등의 벌판에 ‘학벌(學閥)’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고 살인적인 학벌 경쟁이 생겨났다. 학벌 경쟁으로 인한 새로운 계급사회 등장이 오늘날 ‘헬조선’이라는 현실을 낳았다. 

그리고 오늘의 청소년들은 꿈조차 꾸기를 두려워할 정도로 심화된 빈부격차 속에서 돈 많은 부모를 둔 것도 실력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사회가 됐다. 이제 우리에게 학벌 사회를 타파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인 시대가 됐다.

유럽의 68혁명 당시 프랑스를 보자. 당시 프랑스는 고등학생들이 파리 거리를 휩쓸었다. 그들은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프랑스 학벌 체제의 정점에 있던 소르본대학 해체를 주장했다. 

그 결과 소르본대학은 해체돼 현재 파리 1대학에서 10대학까지 대학 체제의 전면적인 재편을 이뤘다. 중요한 점은 바로 고등학생들이 학벌 체제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공부 기계로, 학습 노예로 길들이는 체제를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68혁명에 ‘모든 형태의 억압받는 체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진보학자 김누리 교수는 우리 학생들을 경쟁 사회의 ‘마지막 노예’라고 지칭한다. 이제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노예 상태에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들을 옥죄고 길들이는 학벌 사회에 강력한 저항을 펼칠 때다. 왜냐면 시대적으로 18세 선거권 획득에 따른 학생 파워 형성 기반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이를 응원하듯 최근 삼성전자 회장은 10년 역사를 맞이하는 마이스터고를 방문해 "젊은 기술인재가 제조업 원동력"이라고 격려했다.

최근 지방 몇몇 특성화고(상고) 출신 학생들이 지역인재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중학교 때 이미 우수한 성적을 보유한 학생들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일찍 경험을 쌓으면 전문가가 돼 나중에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특성화고로 진학해 꿈을 이룬 학생들이 증가한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일반고 학생들조차 ‘수능 No’를 외치며 취업난 속 일찌감치 공무원을 준비하며 성적이 상위권이더라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는다. 그 지역 공무원 임용에 1020세대가 19%를 차지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초저출산(0.7)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더 귀해지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중시하는 풍토다. 사회의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도 학벌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한국에서 학벌이 가장 먹히지 않는 곳이 바로 공직사회"라며 "일찍 들어올 수만 있다면 더 좋다"고 권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이제 세상은 청소년들의 저항과 용기, 도전을 요구한다. 이는 학벌 세상을 혁파하는 용기와 행동으로 시작된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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