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철 의왕시 문화예술정책관
안종철 의왕시 문화예술정책관

1960∼1970년대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산아 제한 정책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거리마다 나붙었고, 1980년 초반 출산율은 2.1명으로 떨어졌지만 산아 제한 정책은 지속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권했고, 아내를 사랑하는 기준점이 됐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대한민국은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엄마 저도 동생이 갖고 싶어요’라는 공익광고가 나왔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는 인구절벽, 인구재앙, 대한민국 소멸이라는 섬뜩한 단어들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세계 평균 ‘합계출산율’은 2.3명이지만 동아시아 주요국은 1명도 채 되지 않는다. 전 세계 산업화된 국가들은 공통적인 저출산 현상을 겪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독 더 심한 진통을 겪는다. 높은 양육비와 집값 등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여성들의 경력 단절, 도덕주의, 입신양명 문화, 학력 중시 사회 분위기가 출산율 저하 원인으로 지적된다.

출산율이 높아지려면 결혼이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런데 미혼 남녀들은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생각하며, 설령 한다 해도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얼마 전 화제가 된 기사 내용을 보면 여성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배우자상은 키 179㎝, 연소득 6천만 원, 자산 3억5천만 원 등이며,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은 키 164㎝, 연소득 4천400만 원, 자산은 2억2천만 원 등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결혼이 성사되는 최소한 조건은 아닐 것이다. 다만, 미혼 남녀의 결혼관이 이 정도라는 건 흥미를 떠나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까지 든다.

남자와 여자, 각각의 인식에 있어 다소 차이는 있지만 조사 결과를 단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키 작은 사람과는 살 수 없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과는 살 수 없다. 가난한 사람과는 살 수 없다.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과는 살 수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결혼이란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결점들을 채워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출발은 미미하나 하나하나 살림살이들을 마련해 가는 재미로 살아가는 게 결혼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아무튼 이렇게 어려운 조건을 갖추고 결혼을 했다고 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또 생긴다. 딩크족 등 무자녀 가구들은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로 시간·경제적 여유 말고도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패밀리스토밍’ 자리에 초대된 청년세대 무자녀 부부들 사이에 나온 애를 안 낳는 이유를 "돌잔치에서 아이가 걷는지부터 시작해서 학교와 직장까지 계속 비교해야 하는데, 그 무한경쟁에 부모로서 참전할 자신이 없다", "아이의 입시 전쟁에 참전할 자신이 없다", "아이 성적은 곧 부모 성적표다. 지금은 학력 수준이 높아진 부모들 경쟁심이 더 심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아연질색하게 만드는 것은 "개근 거지"라는 말이다. 오죽하면 개근하는 아이들은 가난해서 여행을 못 가는 거라고 비하하는 말까지 나왔을까.

비교 당하는 삶도, 비교하는 삶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례는 많다. 예전에 부탄이 세계 행복지수 1위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탄의 순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SNS를 통해 외부 세상을 알고 남과 비교하는 것이 일상이 됐기 때문이라 한다.

결국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철학과 기준을 갖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어느 등산로 입구에 써 놓은 글귀가 생각난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수영장 바꾼다고 해결이 안 되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직장을 바꾼다고 해결이 안 되며, 건강을 모르는 사람은 비싼 약을 먹는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니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바꾼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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