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창작무용 ‘봉수당진찬연’ 기술감독 미켈레 눈노(오른쪽)· 이지화 씨.2. ‘무고:사도세자의 죽음’.3. ‘선유락’에서 배를 탄 혜경궁 홍씨.
1.창작무용 ‘봉수당진찬연’ 기술감독 미켈레 눈노(오른쪽)· 이지화 씨.2. ‘무고:사도세자의 죽음’.3. ‘선유락’에서 배를 탄 혜경궁 홍씨.

화성원행의궤도 속 봉수당진찬연, 궁중정재인 전통연희가 가상현실을 만나 살아 움직이는 신비의 찬연으로 재탄생했다.

IT업체 미켈레 솔루션의 미켈레 눈노(Michele Nunno)씨와 아내 이지화 씨는 "2016년 한국에 정착하면서 세운 미켈레 솔루션 모토는 ‘당신은 상상만 하세요. 나는 기술로 실현해 주겠다’"라고 설명했다.

미켈레 눈노 씨와 이지화 씨는 지난 25~28일 열린 2023 경기 공연예술 페스타에서 선보인 창작무용 ‘봉수당진찬연’에서 미디어 기술감독을 맡았다.

창작무용 ‘봉수당진찬연’은 10개 궁중정재 중 주요 5개를 채택,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가미해 생동감 있게 전했다.

▶프롤로그:달·만천명월주인옹 ▶헌선도:진찬연의 시작 ▶무고:사도세자의 죽음 ▶학연화대무 ▶검무:용호상박 ▶선유락 ▶에필로그:오방색의 조화로 구성한 공연은 궁중연회 자체를 표현하는 대신 진찬연에서 혜경궁 홍씨의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복잡 미묘한 내면을 AR, 증강현실, 이펙트 효과로 신비롭게 구현했다.

특히 사도세자 죽음이 형상화된 ‘무고’에서 무용수 몸짓에 따라 피어오르는 붉은 파티클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장수를 기원하는 효 사상이 담긴 ‘학연화대무’는 고상한 무용수의 손짓에서부터 실제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는 학으로 구현돼 춤이라는 몸짓언어의 예술성을 극대화했다.

또 기쁨의 환희로 가득 찬 순간 인생이란 한낱 산속을 유람하는 듯 짧고 덧없는 것이라는 혜경궁 홍씨의 마음은 산중의 강, 십장생도 속 배를 타고 유유히 누비는 선유락으로 입체감 있게 재현했다.

눈노 씨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배는 RC카 원리를 이용, 리모컨으로 조종해 움직이며 드라이아이스 대신 수증기를 이용해 인체에도 무해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점과 선으로 만들어진 달, 일월오봉도, 십장생도를 구현한 원화를 그래픽으로 실현했다. 또 적외선 카메라 감지 센서와 프로그래밍화한 모션캡처로 배우들 움직임에 실시간 반응하도록 했다.

눈노 씨는 "수만 개에 달하는 조명을 사용해 달을 형상화하고, 무용수 움직임 하나에 흩어지고 모이고를 반복해 흐르는 물을 실제적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어 "프로그래밍된 여러 효과를 배우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무대에서 보여 주는 작업이 일반적이지는 않다"며 "각각의 신을 보면서 배우들 움직임과 무대 상황에 따라 효과를 조절하는 동시에 여러 작업을 실행해야 해 프로그램 구동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전통문화와 사상이 바탕이 된 이번 공연이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한 눈노 씨는 "15년 전 만난 한국인 아내(이지화 씨)가 봉수당진찬연에 얽힌 역사적 내용을 전반적으로 설명해 줬고, 그동안 한국에서 생활과 연극 공연에 참여했던 경험 덕에 한국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며 "제작 초반 외국인 작업 참여에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전통무용에 한정되지 않는 창작무용에 더욱 시너지를 냈다"고 전했다.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컴퓨터프로그래머 눈노 씨는 2001년 이탈리아에서 IT업체 CNP Studio SRL을 운영했으며, 2004년부터 150여 년 전통의 이탈리아 ‘비아레조 카니발(Carnevale di Viareggio)’ 기술감독, 2015~2016년 가평 거대 인형 축제 ‘까르니발레 가평’ 기술감독으로 참여했다. 또 2017 엠넷 아시아 뮤직어워드(MAMA-Mnet Asia Music Awards) 그룹 워너원 멤버 강다니엘 무대에서 LED 거대 인형 ‘쿠오레’, 2018 자라섬재즈페스티벌 ‘플로팅LED피아노-강 위의 선율’ 등을 선보였다.

눈노 씨는 "코로나로 페스티벌과 공연계가 침체되면서 예술가들과 작업을 4년 기다렸는데, 봉수당진찬연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 그동안 개발한 기술을 잘 표현하게 돼 기쁘다"며 "이번 공연으로 앞으로 AR 기술을 연극, 무용 등 공연 무대에서 선보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인영 기자 li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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