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 위치에 서거나 그런 처지를 말한다. 요즘 주변에서 이와 관련한 얘기가 뜨겁다. 요지는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 하고, 중립 수호에 방해되는 요소는 가차 없이 쳐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견 맞는 말이다. 객관적 사실을 전해야 하는 기사는 어느 한편에 매몰돼 편향된 시각으로 쓰면 사실을 가장한 자기 주장이 돼 버린다. 인턴기자 시절 하나의 주제에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을 취재할 때 양측 의견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를 고른 비중으로 다뤄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얘기를 수차례 들으며 배웠다. 자로 잰 듯한 중립. 언론인이라면 지향해야 할 당연한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지만 최근 기자에게 쉽지 않은 일처럼 다가올 때가 많다.

사건 취재 때마다 당사자들이라고 생각해 얘기를 듣고 쓴 기사가 나가고 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당사자라 주장하며 기사가 편향적으로 나갔다며 항의하는 전화를 종종 받는다. 물론 내 능력이 모자라 취재 당사자 지정에 한계를 드러냈을지도 모를 일이고, 이로써 더 깊이 고려해야 할 사람이 많음도 깨닫는다.

이런 까닭인지는 모르나 혹자는 만평도 하나의 기사에 속하고 칼 같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만평(풍자만화)은 정치·경제·사회 같은 우리 일상 속 어려운 문제들 가운데 작가가 비중 있다 판단한 부분을 해학적으로 풀어내 독자에게 웃음 또는 냉소를 전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본다. 즉, 작가가 가진 표현의 자유 영역에 가까우며, 이를 중립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려는 일은 사상 검열에 가깝다고 느낀다.

게다가 그 잣대에 새겨진 ‘중립’ 눈금을 어디에 두는지도 각자가 속한 이념이나 신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그 눈금을 가장 보편·타당하게 새길 권한은 언론사에겐 대다수 ‘독자’들이지만, 돈이 권력인 세상에서는 돈줄을 쥔 놈 입맛에 맞게 재단되는 처지가 개탄스럽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2022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입상한 ‘윤석열차’를 전시했다는 사실만으로 지원을 끊은 모습과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려는 일이 오버랩되며 입안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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