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수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유은수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얼마 전 영화 ‘코다’를 봤다. 배우 윤여정의 수어 수상 발표로 화제가 됐던, 그뿐 아니라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었던 그 영화. 나 역시 코다를 안 지 꽤 됐지만 최근 수어와 관련한 전시를 보고 문득 생각이 나 보게 됐다. ‘Coda’는 청각장애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 말이다. 청인인 자녀와 농인인 자녀 모두를 아우르지만 보통 청인인 자녀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목에서 알듯이 영화 주인공은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 ‘루비’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청인인 루비는 당연하듯 가족의 곤란한 일을 해결하고, 가족들은 루비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던 가족은 다른 도시로의 대학 진학을 꿈꾸는 루비와 갈등을 빚게 되고, 그러한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영화는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내용으로 전개된다. 장애를 가진 가족에게 일어날 일들을 유쾌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녹여 적당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적당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가득하지만 가족들이 루비의 공연을 보러 간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루비는 노래를 전공으로 대학 진학을 꿈꾼다. 듣지 못하는 가족들은 그 꿈이 가벼운 방황일 뿐이라 여기지만 이 공연으로 딸의 진심을 느끼게 된다. 공연 중반에는 모든 소리를 없애고 가족의 시점에서 공연장 분위기를 느끼게끔 하는데, 이 연출이 참 인상 깊었다. 듣지 못하는 부모에게 딸의 노래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역이었음이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아버지는 노래를 다시 불러 달라며 루비의 목 부분에 손을 얹는다. 내가 추측하는 바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소리를 냄으로 인해 일어나는 몸속 울림을 느낀 듯했다. 아버지가 록 음악을 좋아한다는 대사에 비춰 볼 때 드럼과 베이스의 쿵쿵거림을 즐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얼마나 났는지 모른다.

한 은행 본사에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그 은행 사내 카페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직원분들이 청각장애인이었다. 그래서 주문을 수어 혹은 필담, 아니면 앱을 이용하곤 했다. 평소와 같이 음료가 완성되길 기다릴 때였다. 어떤 직원분께서 음료를 가져가며 수어를 하는 게 아닌가. 아마 감사하다는 뜻인 듯하다. 그때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음료를 가져갈 때 감사하다는 마음을 소리내 말했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어서 그때 스스로를 얼마나 반성했는지, 그분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그만둘 때까지 음료를 가져갈 때 고개만 꾸벅거릴 뿐 수어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다. 수어를 하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던 듯싶다. 괜히 유난 떠는 것 같아서, 직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서 주춤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수어는 청각장애인만 이용하는 언어가 아닌데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조심스러워서 뭔가 사용하기 전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망설였다. 내가 너무 소심쟁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난 학기 사회문제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에 장애를 가진 레고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수학교에 관한 발표 이후 장애를 가진 학우와 비장애인인 학우를 분리해 교육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생각할 점이 많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진정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애를 접할 일이 많아져야 함을 몸소 느꼈다.

영화를 본 후 나는 수어 공부를 시작했다. 필요에 의해서, 어떤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자격 요건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첫 공부랄까. 사실 이 글에서 수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공부가 더 필요한 영역인 듯싶어 다음으로 미룬다. 그때는 아는 게 더 많아졌으리란 기대감에 설렌다. 다음에는 청각장애인을 만나면 망설이지 않고 자신 있게 인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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