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최근 전북 행사장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입장하는 대통령과 악수한 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고성으로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민들이 불행해집니다"라고 외친 말이 전국에 방송을 타면서 정치적 논란이 가열된다. 이는 그 다음 벌어진 볼썽사나운 사건의 기폭제가 됐다. 그는 경호원들에 의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이 막히고 사지가 들려 짐승처럼 행사장 밖으로 쫓겨났다. 이를 두고 여야는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확연하게 내세워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변함없는 이 나라의 저급한 정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지방 행사를 도우러 온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그리고 시기와 장소에 맞지 않는 말로 소란을 피웠다는 게 여당의 주장이라면 국민의 대변인인 국회의원을 무슨 왕조시대도 아니고 대통령과 물리적 거리를 둔 채로 위해(危害)를 가할 만한 상황도 아닌데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처참하게 과잉 경호로 저지를 당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국민을 무시한 민주주의 파괴라고 야당은 맞선다.

이는 어차피 이 땅의 정치 실종이 가져온 부끄럽고 한심한 사건으로 그 직접적인 원인은 대통령의 언행 불일치, 거짓말과 왕조시대와 같은 권위와 상명하달식으로 당무에 개입해 당대표를 수차례 교체하는 등 국정 운영의 난맥상에 있다. 이를 보는 청소년들은 우리 정치를 어떻게 생각할까?

최근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정책네트워크는 지난해 7월 전국 초·중·고교생 1만3천8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교육정책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통령과 정치인보다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더 신뢰함이 밝혀졌다. 또한 우리나라 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학생은 10명 중 1명뿐이었다. 중고생(1만1천79명)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업별 신뢰도 조사’에서 학생들은 학교 교사(86.8%), 검찰·경찰(61.7%), 판사(55.6%), 언론인(37.6%), 종교인(34%), 인플루언서(31.5%), 정치인(23.4%), 대통령(22.7%) 순으로 ‘신뢰한다(매우 신뢰한다+신뢰한다)’고 답했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1년 전 조사(27.0%)보다 4.3%p 감소하며 비교 대상 중 꼴찌를 기록했다.

학생들은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 의견을 반영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서도 10명 중 1명(13.5%)만 긍정적이었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비교적 정치의 때가 덜 묻은 순수한 편임을 감안하면 그들에게 비친 정치와 정치인, 특히 대통령의 모습은 실망과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한때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에 ‘대통령’이 단골 메뉴였음을 고려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역사적으로 덕망을 갖추고 희망과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며 유능한 대통령을 보유하는 데는 지극히 불행하다. 역대 어느 정권도 국민적 지지와 성원을 받는 덕과 인품을 갖춘 향기로운 인간적인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렇게 지지리도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바람직한 정치란 무엇인가? 고전 「논어」에 따르면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해 지도자의 덕망과 품격, 인간의 향기에 취해 멀리서도 기꺼이 찾아오는 것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다. 당나라 태종은 위징과 같은 쓴소리를 하는 신하를 곁에 두고 인내와 성찰로 성군으로 호칭받는 ‘정관의 치’를 이뤘다. 자주 격노하는 대통령 주변에는 충신이 없다. 그러지 않아도 검찰 출신의 위압적인 자세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게 느껴지는 오라에 대통령의 빈번한 격노는 정치 실종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스스로 공언한 기자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와 소통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각본에 의한 일방적인 발표,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 최고 지도자다운 덕과 인품을 하루아침에 갖출 수는 없어도 민심을 경청하려는 노력과 인내, 용기는 의무다. 국민의 아우성과 쓴소리는 차치하고 대변자인 의원들의 비판의 소리는 당연히 겸허하게 수용하고 자신의 통치를 돌아봐야 한다. 역사에 한 번 기록되는 대통령의 임기는 짧다. 이 사건을 통해 국정 운영에 국민 소리를 경청하고 어떤 쓴소리도 감내하며 더 나은 정치를 위한 성찰의 계기로 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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