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정연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네이처가 지난해 말 ‘2023년을 빛낸 과학계 인물’에 처음으로 비인간을 지명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을 몰고 온 OpenAI가 그 주인공으로, 과학 발전과 진보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게 선정 이유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 가운데 하나인 챗GPT가 교육현장에 끼친 영향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간의 언어정보를 대량 학습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은 인간만이 리터러시 주체가 아님을 물리적으로 증명한 선언이자, 사고와 표현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인간의 고유한 언어능력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교육의 무효성을 제기한 도전적 사건이다.

일례로 인공지능을 매개로 한 읽기(AI-mediated reading)와 알고리즘 기반 글쓰기(algorithmic writing)는 뜻을 생각하며 세심히 살피는 정독(精讀)과 수차례 다듬어 가며 완성도를 높이는 글쓰기를 한갓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이제 읽기는 인공지능에 의해 가공된 편집본을 훑어보는 행위로, 쓰기는 프롬프팅 이후 생성된 텍스트에 인간의 흔적을 남기는 정도의 행위로 전락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문제 삼고자 하는 의도는 이 같은 사태의 심각성에서 기인했다.

지난해 11월 OpenAI에 큰 사건이 있었다.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가 이사회에서 전격 경질됐다가 다시 복귀했던 사건이다.

사건의 요지는 모든 규제를 철폐해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부머(Boomer, 기술낙관론자)와 인간의 잠재적 위협이 되는 AI에 대해 규제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두머(Doomer, 기술비관론자) 간 논쟁과 대립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에 대한 비판에 주목했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철학자 피터 싱어가 제안한 개념으로 선한 일을 도모할 때 냉철한 이성으로 긍정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실리콘밸리에서는 공익을 위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도 괜찮다거나 많은 기부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식으로 변질됐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학습의 효율성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실리콘밸리의 도덕관을 호출한 것은 효율성에 대한 교육적 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효율성이 ‘짧은 기간에 이윤·효과를 극대화할 그 무엇’을 가리킨다면,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경험하는 학습의 효율성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학생 능력을 진전시켜야 하는 교육 관점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개념일 수 있다.

또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의 리터러시 관련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킴으로써 생산성 담론을 강화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깊게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의 과제 수행 능력과 인간의 리터러시 능력 간 비대칭성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인간 내면이 더욱 피폐해질 듯한 우려 때문이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경고했던 풍요로운 기술문명사회에 가로놓인 인간 정신의 궁핍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인 셈이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내면이 견고해지려면 수많은 생각의 편린들이 충돌하며 축적되는 시간의 지층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은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면서 그 취지를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교육의 목적은 전제들의 기반을 흔들어 놓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고, 외적 현상에 대한 저변과 배후에 작동하는 것들을 밝히고, 젊은이들에게 방향감각을 잃게 해 혼란을 가져다 주고, 다시 그들 스스로가 방향감각을 되찾아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 인간의 열정과 헌신, 수고와 노력이 강조되는 우회로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또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촉발시킨 거대한 속도전에서 책임 있는 응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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