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 명예교수
김준우 인천대 명예교수

최근 국내 경제연구단체들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1%대에서 2%대로 낮은 전망치를 내놓았다. 이를 두고 정부나 각 언론은 경제 진단과 대응 방안에 대해 갑론을박하나, 경제전문가들의 우려는 국내 어두운 경제상황에 비춰 이웃 일본처럼 자칫 L자형 장기 저성장 터널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데 모아진다.

저성장을 피할 수 없다면 막연한 불안감보다는 코로나 사태처럼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옳은 길이다.

저성장이란 용어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저성장은 글자 그대로 국민 생산량(GNP) 감소로 인해 실업이 증가하고 가계소득이 주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불경기, 경기 침체를 뜻하는데 장기가 되면 경기 불황이라고 하고, 심각해 경제위기로까지 치달으면 공황이라고 한다. 

여기에 물가까지 올라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부른다. 이는 1970년대 중반 월남전 직후 레이건 정부가 맞닥뜨린 경제현상으로, 코로나 이후 현재 우리가 겪는다. 

저성장 시대 사회는 실업 고통이 큰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점은 사회구조 변화다. 침체가 장기화되면 경제도 어렵지만 여기에 적응해 사회구조 자체도 변한다. 사실 저성장 경제에서는 열정, 혁신, 도전처럼 사회 역동성을 주는 힘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어떠한 노력을 해도 성공보다는 좌절이 더 많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일들이 누적된다면 사회 전반은 어둡고 무기력해진다.

서울대학교 김현철 교수에 따르면 엔화 환율 상승을 골자로 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이 겪었던 소위 ‘잃어버린 40년’의 결과, 저성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민간을 포함한 정부까지도 무기력해졌다고 한다. 사회가 어둡고 무기력하게 되면 어떠한 극복 노력을 한다 해도 시도도 어렵지만 달성하기도 어렵기 마련이다.

물론 정부는 저성장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정책을 펼친다. 흔히 쓰는 방법이 유동성 완화, 즉 돈을 풀어 수요를 증진하는 것인데 우리 문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미 유동성이 너무 풀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미 고물가가 된 시점에서 통화정책을 함부로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 

차라리 눈을 돌려 새로운 시장, 즉 그동안 등한시했던 동남아, 남미 혹은 아프리카 시장을 외교적으로 개척하는 게 중요하고, 그동안 강조했던 이념보다는 실리외교에 관심을 둬야 하는 시점이다. 사실 일본과 인도의 경우 이념적으로는 패권국 미국에 편들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상대국인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교역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 밖에 기업이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기술 개발을 하도록 지원하는 일, 산업인력 재교육과 공장 혁신에 대한 투자 그리고 과감하게 정부 규제를 풀어 새로운 경기를 활성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 개발이나 기업 투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고 그 결과도 확실치 않다. 정부 규제를 철폐하는 일도 기득권을 쥔 세력의 반발로 총선을 앞둔 정부로서는 시행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어떤 결정적 위기가 아니라면 현재처럼 유지하기 쉽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는 실질적인 저성장 극복 이슈가 뜨거운 정치적 의제가 돼야만 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할 수 있는 한 원가를 절감해야 하고, 소비자의 변화한 성향에 맞춰 새로운 전략과 조직 등 기업 형태를 적응해야만 한다. 특히 일본 기업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린 ‘돈키호테’ 전문점의 등장과 최근 대형마켓 붕괴 현상이 그것이다. 

정부 지원에서 소외된 일반인들의 고통은 더욱 크다. 물론 가계 수입이 줄어든 만큼 소비를 줄여 절약해야 하고, 금융비용과 같은 은행대출을 줄여야 한다. 저성장에서는 실물이든 금융이든 수입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지난 부동산 폭발 때 소위 영끌을 해서 집을 구입했다면 높은 은행이자로 고통은 앞으로 상당 기간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태영건설이나 롯데건설 사태에서 봤듯이 부실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경제는 더욱 경색되고, 그래서 민간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저성장 시대에 흔히 정치권은 포퓰리즘 물결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부의 양극단화가 더욱 두드러져서 국민 불만이 커질 테고,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남발된 비현실적 포퓰리즘 공약에 솔깃하게 마련이다. 이는 국가가 사회주의화되기 쉬워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기 쉽다. 예컨대 남미 국가들이 그랬고, 유럽의 그리스를 비롯한 저성장 국가들이 사회주의에 쉽게 빠진 이유다. 그래서 이번 4월 선거에서는 정치인들의 부적절한 포퓰리즘 공세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병도 초기에는 쉽게 고치듯이 저성장 역시 초기에 극복하지 못하면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 불황은 어쩌면 국민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칫 국민 성향으로 고착화할 우려도 있다. 이제까지 선진국 대열로 기적처럼 달려온 그 노력이 한번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 정부와 민간은 힘을 합해 코로나를 극복했던 것처럼 이제는 저성장 늪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짜내고 극복해야 할 때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