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효림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채효림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친구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감정을 털어놓지 못했다. ‘내가 화내도 되는 상황일까’, ‘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이것저것 따지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이야기를 꺼내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집에서 잔소리하는 부모님께는 쉽게 짜증을 내면서도 밖에서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순간의 감정에 못 이겨 큰소리를 내거나 날카로운 말로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은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통한다. 나 역시 화를 억누르고 차분하게, 좋은 말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게 좋은 대처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할 때조차 부당하게 화내는 손님께 맞대응하기보다 미소로 응대하는 편이 상황을 해결하기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웃는 얼굴과 둥근 언사를 통해서는 감정을 해소하기도, 상대에게 내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노의 필요성을 실감한 후 막상 화를 내려니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내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도, 곧바로 정확하게 화난 이유를 설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화를 표현하는 걸까? 해답을 알고 싶어 뒤척이다 유튜브에 ‘화내는 법’을 검색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내 앱 사용자 수 1위의 명성을 지닌 유튜브에서도 좀처럼 답을 찾기 어려웠다. 심호흡하거나 하나부터 열까지 숫자를 세는 등. 대부분 영상이 화를 참는 법만 알려 주기 급급했다. 네이버 포털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대다수 칼럼이 감정을 억누르고 똑똑하게, 차분히 말하는 법을 다뤘다.

개중에는 ‘분노방’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값을 지불한 뒤 그릇을 깨부수고 마네킹을 때리는 등 폭력적인 행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일시적 해결책에 불과하니 다른 해법을 찾는 게 좋겠다며 마무리하는 후기가 주를 이뤘다. 무작정 참는 법과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법 모두 원하던 답이 아니었다. 그 중간 어딘가 적당하게, 중용을 실천하며 화를 내는 법이 분명 있을 텐데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가뭄 속에서도 콩이 나듯,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정우열’에서 간신히 그 답을 발견했다.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 원장과 누다심 심리상담센터 강현식 대표는 자신의 분노를 파악하고 표출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상을 보던 중 가슴에 와 닿은 말을 소개하고 싶다. "소리가 너무 크면 줄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 안 들리면 키우는 것도 조절이듯이, 내가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정도 작은 분노를 키우는 것도 조절이지 않을까요."

두 전문가는 화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억누르는 법만 논의하는 사회 풍조 탓에 화를 내는 법은커녕 자신의 감정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람들은 분노가 일지 않아도 스스로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화를 내야 한다. 계속 연습하다 보면 작은 분노의 감정이 일더라도 빨리 알아채기 때문이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표출하지 않고 회피한다면 마음속에 쌓이기 마련이다. 영상에서는 이렇게 누적된 분노의 화살이 주로 가족에게 향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밖에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주로 나쁜 자식, 나쁜 부모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나와 가장 가깝고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듯하다. 부모님께 쉽사리 소리를 높이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밖에서 감정을 잘 추스르더라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행위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일상을 병들게 한다. 영상을 접한 후로는 내 안에 작은 불씨를 감지하고 표출하기 위해 화내는 법을 연습 중이다. 나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 밖에서도 벌컥 화내 보자. 반복하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도 요령이 생기지 않을까.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