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지난 2월 7일 오후 10시 KBS 1TV에서는 100분간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를 방송했다. 이는 3일 전 사전 녹화한 대통령의 국민과의 신년대담이다. 여기엔 많은 문제점이 있다. 늦은 시간대에 국민과의 소통이란 명분으로 3일 전 녹화한 내용을 방송한 것은 현대 정치사에 희한한 의미를 남겼다. 

매년 초 대통령과 국민과의 만남인 신년대담은 큰 의미가 있다. 국정 운영에 대해 최고 책임자는 정책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다. 국민 대부분은 궁금한 현안과 대통령의 국정 철학, 다양한 정책, 애로사항 등등을 묻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로 드러난 방식은 아쉽고 안타까운 측면을 넘어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에 심히 유감이다. 이에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방식에 대해 몇 가지를 언급하며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3일 전 녹화해 방송한다는 것이 누구 또는 어느 부서의 발상인지 궁금하다. 그 파격적인 생각에 그저 놀랍고 신비할 뿐이다.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도 아닌데 이런 소통 방식이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독재국가 김정은도 2019년 1월 1일 자정 신년사를 녹화해 그날 오전 9시에 방송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 역시 지난해 말 내·외신 기자 600명 앞에서 4시간 생방송으로 연례 기자회견을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대국민 신년대담 방식이 그저 의아하고 심히 경악할 뿐이다.

둘째, 대통령의 신년대담 중요성에 비춰 심야 시간대에 국민들이 보든 안 보든 상관없다는 운영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원래 이 연초 행사의 목적은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보고 들음으로써 국정 운영을 이해시키고 지지를 얻어 탄력을 받으려는 것이 목적 아닌가? 언론에 따르면 대통령은 측근들과의 60분 대화에서 58분을 혼자서 줄기차게 말할 정도로 달변이고 지식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현장에서 국민의 직접 질문 하나 없이 사전 제작에 의해 이뤄졌는지 절대 납득이 어렵다.

셋째, 국영방송과는 달리 공영방송 KBS는 정권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고 기본 의무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요구한다고 수용한 것은 용인할 수 없다. KBS의 구구한 해명은 차치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방송이 다른 방송을 제치고 정권에 유리하게 협조해 운영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한 편향적 행태이며, 대통령이 이런 방송을 애용하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신봉하는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넷째, ‘언론과의 소통이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약속한 대통령의 국정 설명 의무 위반이다. 대통령은 거의 1년여 전부터 기자와의 대담이나 소통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은 달변에다 확신에 찬 지식이 많다. 그런데 언론과의 직접 소통을 피해 변칙적인 수단으로 행하는 것은 대통령 책무를 자기 편의대로 회피하거나 제한한다. 이는 대통령 처지에서 오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는 나지 않는 법이다.

종종 대통령의 ‘격노’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다. 대통령은 참모, 장관들과의 대화와 소통 시에 격노할수록 민주주의 방식은 멀어져 간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 태종은 직언을 서슴지 않는 충신 위징을 옆에 두고 온갖 쓴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통령은 공인으로서 온갖 비판과 거슬리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면전에서 강하게 비판하는 야당 의원을 경호원이 입을 막고 사지를 들어 내쫓는 소통 방식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없어야 한다.

대통령은 이제부터라도 언론과 직접 소통해서 국정 운영에 관해 자신의 소신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검사 시절 위압적인 방식과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불통 방식으로는 원활한 국정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국민과 국가를 위한 국정 운영은 민주주의 방식에 철저하게 그리고 대통령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고 여러 차례 공언한 ‘공정과 상식’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국민의 관심이 컸던 신년대담 내용은 차치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소통 방식의 문제점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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