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 대림대 교수
김필수 대림대 교수

5년 전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관련 기관이 자동차에 의무적으로 소화기를 설치하는 내용의 회의를 열어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특히 필자는 항상 자동차용 비상용품 의무화를 강조했다. 이는 유리 깨는 망치와 안전삼각대, 야광조끼와 소화기인데, 하나하나가 생명과 직결된 용품이다.

그중 소화기는 언제든지 차량에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탑재 의무화를 통해 더욱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당시 여러 건의 국회 발의가 된 상태였으나 경직되고 전문화된 법안이 아닌 추상적인 내용의 법안이 진행 중이었다.

이러한 방안 중 하나가 결정되면서 올해 12월부터 모든 자동차에 소화기 비치가 의무화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결정인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상황이다.

우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ABC소화기는 크기도 크고 관리가 어려운 종류다. 좋은 효과와 낮은 가격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크기도 너무 크고 이동하는 차량에 비치한다는 부분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 

이미 7인승 이상에서는 넓은 공간을 활용, 트렁크에 같은 소화기를 의무 설치하기에 이해가 되나 새롭게 자가용에 설치하는 부분은 융통성에 문제가 크다. 자동차용 소화기는 비치된 소화기로 직접 소화하라는 뜻보다는 불의 확산을 지체시켜 골든타임을 늘리고 119소방대가 와서 소화할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무겁고 부피가 큰 소화기보다는 최근 개발된 각종 소화 기능이 뛰어난 휴대용 소화기를 인증해 실내에서 운전자가 직접 손으로 꺼낼 위치에 두게 하는 편이 가장 현명하다. 

앞서 필자가 언급한 각종 회의에서도 소방청 등에서 기존 ABC소화기만 주장하던 부분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해외 사례를 참고해 소형의 고성능 소화기를 다양하게 사용할 인증 기반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는 12월부터 의무 장착 시행에 따라 기존 ABC소화기를 만들던 회사의 독과점 폐해를 줄이고 다양한 제품군을 통해 소비자와 제작사가 선택할 운신의 폭이 요구된다.

심지어 일부 수입사의 경우는 이미 운전석 하단에 장착된 소화기를 없애고 새로운 국내 규정에 맞춰 트렁크에 안내종이를 붙이고 커다란 ABC소화기를 장착해야 하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소형 고성능 소화기가 운전석 좌석 밑 등에 장착돼 항상 빠르게 이용하는 시스템이 구축됐고, 당연히 인증도 받은 상황이다. 우리도 이미 한·유럽 FTA가 된 상황에서 유럽과 공동 인증을 통해 수입차이건 국산차이건 모두 활용할 큰 그림이 요구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운전석도 아닌 큰 소화기를 트렁크에 장착해 효율성은 물론 골든타임이 줄어든다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악성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또 차량용 소화기를 항상 애용하는 반복 교육과 홍보도 중요하다. 장착됐는지도 모르다가 큰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항상 부족한 반복 교육과 홍보, 캠페인도 중요한 의무다.

탁상행정식 제도를 극복해 제대로 일선에서 활용할 안전규정으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재수정해 제대로 구축되기를 바란다. 역시 전문가 자문을 통해 제대로 된 규정으로 재탄생하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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