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쓰러졌다. 10시간에 걸쳐 수만 발의 총알이 그를 관통했다.

남자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모여 그가 어떤 총알을 맞고 죽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 어떤 사람도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라파엘 디 텔라라 하버드 교수는 아르헨티나의 급격한 경제 몰락을 이렇게 진단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했다면 명확히 진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굳이 이 말을 인용하는 까닭은 한국의 저출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기자는 저출산 원인을 찾는 일이 남자를 죽인 총알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저출산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론을 개진한다. 고등학생들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나름의 이론과 논리로 저출산 원인을 분석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원인은 정답이기도 하다. 애초에 하나나 둘의 요인으로 출산율이 떨어졌다면 이미 문제는 해결됐을 테다.

대다수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나 일자리 부족, 낮은 행복도를 지목하겠으나 이 요인들도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대구나 부산 같은 지방의 아파트 가격은 서울·경기 일부만큼 살인적이진 않지만 지방 출산율도 바닥을 기는 실정이다. 또 한국이 아무리 일자리가 없고 행복도가 낮아도 전시 상황인 우크라이나나 내전 중인 미얀마보다 낮을 이유는 없다.

북유럽의 예시를 가져오면 더 명확해진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국민행복지수 1등을 달성했다. 한국이 57등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핀란드는 복지나 행복도 부문에서 한국을 월등히 능가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핀란드조차도 출산율 1.26명을 달성해 초저출산 국가로 접어들었다.

저 수치조차도 합계출산율 0.7명인 한국 처지에서는 부러워하고 목표로 잡아야 하는 수치라는 점이 황당할 뿐이다.

정치인들이 열심히 복지정책을 내놓지만 부족한 예산과 한국 정서상 얼마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있는 출산휴가도 눈치가 보이는 판국이니 말이다.

어쩌면 한국은 시간을 너무 끌어 정답이 사라진 문제를 고민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