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건국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큐멘터리를 설날 밤늦게 봤다. ‘건국’에 ‘전쟁’이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을까 의아하면서도 비판적인 느낌이 들면서 관심이 커졌다. 영상(?)이 시작돼서야 ‘픽션’이 아니라 기록과 신뢰성 높은 자료들을 근거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임을 확인했다. 

나는 고대사를 전공하지만 독립과 민족 운명 등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 때문에 조선 붕괴와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분단의 역사적 배경을 다룬 논문들과 책들을 썼다. 사실 나는 이승만 정부의 ‘공’과 ‘과’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편이다. 특히 이승만 정부가 6·25 발생을 예측 못했고, 대비 못했던 실정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몰랐던 자료들이 영상에 소개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고, 이승만과 그 시대에 대한 사실과 인식이 생각 이상으로 왜곡됐음을 확인했다. 물론 친일파와 관련된 실상은 과장되고, 일부 세력이 속인 부분들은 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전쟁 방지 노력이나 토지 개혁 성과에 관해서는 오해했거나 인식이 못 미쳤던 것을 알게 됐다. 

대한민국 체제와 초대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분단의 책임, 친일파 등용, 친미국 체제 선택 등이다. 특히 6·25를 놓고 한때 일부 역사학자들은 ‘북침설’로 평가했고, 소비에트가 붕괴하고 중국이 개방돼 비밀 자료들이 공개된 후에는 ‘남침유도설’을 주장했다. 지금도 일부는 6·25의 본질을 호도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역전시키며, ‘민족’과 ‘통일’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참혹한 피해 상황과 역사적인 죄악을 망각시키게 만든다. 때문에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려면 조선의 멸망과 남북분단, 6·25전쟁에 책임이 큰 소련(러시아)과 중공(중국)의 지정학적 본질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본격화된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만주와 동해 북부는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해양세력의 대리자인 일본이 충돌하는 현장으로 변했다. 조선의 지배권을 실현시키려는 청나라(매우 중요한 사실)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대패했다. 이때 이미 ‘한반도 분할안’이 제기됐다. 

한편, 대륙 국가인 러시아는 지정학적 숙명 때문에 발트해 진출 전쟁을 벌였고, 흑해 장악을 목표로 150년 동안 전쟁 중이며, 1850년 무렵부터 동해 진출을 시도하면서 일본과 충돌 중이었다. 1896년 ‘아관파천’을 계기로 조선의 지배권과 자원 확보, 동아시아 주도권을 놓고 싸우던 두 나라는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이때도 ‘한반도 분할안’이 제기됐다. 결국 러시아는 영국(2차 영일동맹)과 신해양세력으로 부상하는 미국의 도움(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받은 일본에 패배했다. 이로써 조선은 러시아가 아닌 전승국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한민족은 파멸됐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한반도는 새로운 상황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미국과 소련을 양대 축으로 삼은 ‘제2차 그레이트 게임’이 이데올로기라는 외장을 한 채 벌어졌다. ‘냉전(Cold War)’이라는 상황 속에서 한반도는 분단되고 한민족은 분열됐다. 분단의 1차적 책임은 우리가 질 수밖에 없지만, 역사적 과정(일본·청나라· 러시아의 한반도 지배 쟁탈전)과 강대국들의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6·25의 기획과 전쟁 과정을 분석하면 소련과 중공이 책임이 컸다. 물론 조선의 멸망, 민족 분단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던 일본과 세계 질서의 판단에 오류를 범한 미국도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건국전쟁’을 보면서 궁금한 점들이 자꾸 생겨났다. 왜 이 다큐에서는 국내 역사학자들, 특히 근현대사 전공자들, 심지어는 정치학 교수들의 인터뷰가 하나도 없을까? 혹시 물어볼 가치와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제작자의 불신 때문은 아닐까?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 다큐에 공개된 자료들을 몰랐을까? 혹은 알았어도 일반인에게 알려 주지 않았던 것일까? 학자들은 일반인들과 다르다. 일정한 사건을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 편향 없이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면 ‘유어만 보고서’ 등 다큐가 공개한 자료들을 불신하는 학자들은 입장을 표명하고, 양측은 상호 검증하며, 국민들에게 판단하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객관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묻고 싶다. 학자들을 비롯해 자칭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일부에게. 내가 속한, 내가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넘어 ‘절대선’을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체제다. 물론 문제도 많았고, 거꾸로 간 적도 있어서 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바로잡아 왔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부정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그런데 주사파들이나 친북파들은 그렇다 쳐도 ‘민주투사’, ‘인권운동가’라고 자신을 차별화시켜 온 부류들,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자칭 지식인들은 북한 체제를 적극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모습이 별로 없다. 인류의 절대가치를 부정하며 주민, 인민, 민중들을 희생시키는 북한 체제에 습관적으로 침묵하면 동조나 방조한다는 오해를 받고, 훗날 역사의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물론 일부의 변명처럼 일에는 전략과 전술이 있고, 속도와 상황의 조정이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유와 인권이라는 대원칙을 양보하거나 유기할 수는 없다. 

‘건국전쟁’을 보면서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긍정적인 면을 확인했고, 정체성의 핵심인 건국 과정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어느 정도는 가셨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토대를 놓은 아버지 세대들의 희생과 노력에 경의를 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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