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영화 찾기 칼럼에서 그간 많은 영화를 소개했다. 세어 보지 않았지만 가장 자주 언급된 감독은 필시 알프레드 히치콕일 테다. ‘39계단(1935)’, ‘사보타주(1936)’, ‘레베카(1940)’, ‘의혹의 그림자(1943)’, ‘현기증(1958)’, ‘이창(1954)’,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싸이코(1960)’, ‘새(1963)’ 등에 이르기까지 5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이 감독은 무성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에 이르는 영화사의 중요한 기술적 변화에 탁월하게 대처하며 현대 영상문법을 개척하고 정립했다. 

그의 영화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서스펜스 장치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인간의 나약하고 불안한 그리고 악한 본성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았다. 유머가 전반에 깔린 채 인간성의 폐부를 찌르는 영민함이 녹아 있어 대중적인 성공도 이뤄 냈다. 오늘 소개하는 ‘패러다인 부인의 재판(1948)’은 그의 작품 리스트 중 수작보다는 범작에 머문 작품이다. 그러나 아쉬워하긴 이르다. 과히 뛰어나지는 않아도 히치콕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매력을 담았으니 말이다. 

고급스러운 저택 응접실에서 젊은 여인이 피아노를 연주한다. 여성의 뒷모습만을 보여 주지만 어째서인지 이 여성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한참 만에 비추는 여성의 모습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다.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동시에 연약하고 슬퍼 보이는 이 인물이 바로 패러다인 부인이다. 

여성의 뒤쪽 벽면에는 거대한 전신 초상화가 걸렸는데, 집안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듯한 그림 속 인물이 바로 주인공의 남편이다. 이윽고 경찰이 들어와 그녀를 남편 독살 혐의로 체포한다. 그렇게 패러다인 부인은 우아한 삶을 뒤로하고 작고 어둡고 축축한 구치소 생활을 하게 된다. 비록 그곳에서도 특유의 아름다움과 기품은 유지됐지만 어찌됐든 부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변호사 안소니는 누구보다 그녀의 무죄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 인물로 승리를 자신한다. 부인의 남편을 전쟁터에서부터 각별하게 모신 하인 라투르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그에게서 이상함을 감지한 변호사는 다각도로 자료를 수집한 끝에 이 범행을 주도한 인물은 부인이 아니라 하인이라는 의심 속에 추궁을 이어 간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패러다인 부인은 이를 법정에서 정면으로 반박하는데, 남편을 살해한 사람은 자신이라며 하인을 두둔하기에 이른다. 과연 변호사 안소니가 파악하지 못한 숨은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 ‘패러다인 부인의 재판’은 히치콕 감독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인된, 그러니까 누명을 쓴 주인공이 나온다. 억울하게 남편 살해 혐의를 받는 아름다운 부인과 그를 적극 변호하는 변호인. 하지만 이 변호인은 의뢰인에게 푹 빠져 제대로 사건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인과 주인 마님과의 미묘한 관계가 더해져 이 작품은 법정 스릴러 외양을 쓴 삼각 치정 드라마로 전개된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활동했던 터라 등장인물의 심리를 빛과 그림자 그리고 인물 간 구도로 탁월하게 포착해 내는 감독의 장기는 이 작품에서도 유효하다. 다만, 후반부의 반전이 대사로 점철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범죄를 밝히는 과정 속에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이 이끄는 파국을 보여 준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급급한 감정을 과연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표현할지, 진정한 사랑은 이기심과는 어떻게 다른지 영화 ‘패더라인 부인의 재판’은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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