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얼마 전 일요일 오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사연을 방송했다. 

2007년 경매에 마리아 칼라스가 생전 소장했던 보석 11점이 등장하면서 그녀의 죽음이 재조명된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는 전무후무한 소프라노 가수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프리마돈나일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거친 듯하며 모든 음역을 자유롭게 노래한다.

이탈리아어인 디바(Diva)는 ‘여신’이라는 뜻으로, 오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프라노 가수를 말한다. ‘디바’라는 칭송을 받은 오페라 가수는 칼라스가 처음이다.

그리스계인 칼라스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딸을 성악가로 키우는 데 집착했던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돌아왔다. 뚱뚱하고 심한 근시로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녔던 칼라스는 날씬하고 예쁜 언니 재키의 외모와 비교돼 사랑받지 못한 채 외로운 사춘기를 보냈다. 그로 인해 허전한 마음을 음악에 쏟았고, 어머니에게 인정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 노래를 잘하게 됐다.

미국에서 개최한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극장인 ‘아레나’에서 열리는 오페라 ‘라 조콘다’의 오디션에서 발탁돼 1947년 베로나로 향하면서 칼라스의 인생은 달라졌다. 

베로나의 부유한 사업가로 예술, 특히 오페라에 조예가 깊었던 메네기니(1896~1981)가 후원자로 나타났다. 그는 뚱뚱하고 소심한 칼라스에 연민을 느껴 도움을 줬으며, 27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후원자 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해 1949년 결혼했다.

이후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의 몸매에 깊은 인상을 받은 칼라스는 34㎏을 감량하고 아름다운 프리마돈나가 됐다.

칼라스는 베네치아에서 세계 최고 갑부인 ‘선박왕’ 오나시스(1907~1975)가 개최한 선상파티에 참가해 그와 사랑에 빠진다. 

오나시스가 부인과 이혼하자 칼라스는 메네기니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오나시스는 칼라스와 결혼하려 하지 않았고, 미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1917~1963)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1929~1994)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한다. 칼라스는 오나시스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칼라스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그는 후계자였던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 슬픔에 빠졌고, 건강이 나빠져 1975년 담낭암으로 세상을 떴다. 

오나시스가 죽자 칼라스는 우울증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지내며 수많은 약을 복용했고, 1977년 9월 53세에 가정부가 침실에서 칼라스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타계 직후 심장마비로 알려졌지만 이후 자살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아 칼라스 사망 이후 칼라스가 지녔던 보석들을 새롭게 갖게 된 주인은 바로 마리아 칼라스를 옆에서 끝까지 지켰다고 알려진 친구 바소 데비치였다.

마리아 칼라스의 심장마비를 유발한 약물 역시 바소 데비치가 제공한 정황이 밝혀졌지만, 바소 데비치는 수사 중 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마리아 칼라스는 1965년 코벤트 가든에서 자신의 인생과도 흡사한 오페라 ‘토스카’ 여주인공인 토스카의 아리아 ‘Vissi D’arte, Vissi D’amore(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마지막으로 공연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