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정혜진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유엔환경위원회가 정의한 ‘지속가능성’은 ‘미래 세대들의 수요 충족 가능성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현재 수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알려졌다. 즉, 현 세대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자원을 소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남겨 둠을 의미한다.

주한미군기지 반환에 따라 300만㎡에 이르는 용산 부지 자원이 현재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는 현재 필요와 미래 세대 필요 사이를 조율해야 하는 책임을 졌다. 이 엄청난 가능성의 부지를 생태공원으로 전환하는 큰 방향성이 정립된 이 상황은 ‘지속가능한 부지 활용’을 위한 초석이 놓였음을 의미한다.

몇 해 전 공시된 ‘용산공원 국제공모 조성계획안’을 살펴보면 역사·문화적 장소 그리고 녹지생태계를 회복하는 장소로서 계획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지속가능성 측면, 재난·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 측면에 대한 고려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대규모 부지가 대도시 한복판에 제공됐을 때, 그 대지는 ‘현실적 도시 문제의 위협으로부터 유보 상태를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베를린의 템펠호프 공원은 나치 시대 가장 화려했던, 그러나 폐장된 군공항을 별다른 계획적 조치 없이 시민들에게 개방해 자발적인 활동이 일어나는 공원으로 이용되도록 했고, 그 모든 결정 과정은 시민투표로 이뤄졌다. 또 시리아 난민 사태가 터졌을 때 그들을 맞이해 임시 거주지가 돼 준 공간이 바로 템펠호프 공원이었다.

베를린시민들은 공항으로 쓰이던 ‘계획공간’을 자전거, 스케이트, 캠핑, 축제, 집회 등등 자유롭고 자발적인 활동으로 즐긴다. 이는 모두 ‘계획의 최소화’라는 전략에 의해 가능했다. 그들은 당대·후대 사람들이 채워 갈 ‘활동의 장’을 펼쳐놓은 것이다. 나치 시대 흔적을 역사적 지층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공간을 보편적 인류애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모든 활동들은 현 세대의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이처럼 도시에는 개발이익에서 자유로우면서 당대 사회·문화적 가치를 수용하고 변화에 적응해 나갈 무계획의 유보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용산공원뿐 아니라 산업시대 공간으로서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공장부지, 군공항, 브라운필드(brown field), 인프라스트럭처 같은 공간들을 무조건 ‘계획’하려 하기보다 회복탄력적인 전략으로 접근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 어떤 가치를 전달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들 공간이 생태적 가치 회복과 보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동과 재난·재해 같은 격변을 흡수하고 완충할 수 있는 탄력적 공간이 돼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앞으로 실시설계, 건설, 운영과 관리 등 전반적인 실천 과정에 시민 참여 공론장이 더욱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생태와 도시 기능 회복이라는 기본 뼈대에 더해 미래 세대를 위한 잠재성의 유보지로 작동하게 하는 최소한의 계획, 그리고 참여의 공론장과 시민적 실천이 어우러질 때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후대에 전수하는 공간유산을 남길 수 있다. 성찰과 실천의 차원 모두에서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깊이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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