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정부는 올해 대학입시부터 전국 의대 입학정원을 매년 5년간 최소 2천 명씩 늘리겠다고 공표했다. 이는 10년 후 의사 수가 1만5천 명 부족하다는 예측에 따른 조치다. 또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대 정원을 5천58명으로 확대키로 의결한 바에 따른 결단으로 본다. 의대 정원 증원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2022년 기준 한의사를 제외하면 인구 1천 명당 2.12명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66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한 상황인데 피부과·성형외과 같은 인기 학과에 의료인력이 집중되고, 그것도 지역적으로 수도권에 몰려 필수·지역의료 체계는 붕괴 직전이다.

절대다수의 의사 부족으로 겪는 국민들의 불편과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저출산 시대의 젊은 부모들은 ‘소아과 오픈런’에 내몰리고, 지방에서는 의사·병상 부족으로 환자들이 구급차에 실려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도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수도권에 집중된 의사들에게도 의료행위 불친절로 인해 이래저래 국민들은 불만을 삭힐 뿐이다.

최근 37개월 된 손녀는 자주 병원 문 앞에서 막무가내로 울어댄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의사 선생님이 무서워!"라는 똑같은 이유다. 물론 병원이란 특수한 환경은 늘 낯설게 느껴지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의 태도가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것은 독약이다. 의사들이 아이 환자에게 지친 모습, 보호자에게 역정을 내는 불친절이 아이 눈에도 액면 그대로 다가온다. 오죽하면 아이와 동행한 할머니도 진료실을 나오면서 "그 따위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가 또 오겠느냐"며 언젠가 꼭 말해 주겠다고 한다. 

이는 소아과뿐만이 아니다. 필자의 경험에도 진료 과목과 나이에 상관없이 대체로 의사들은 고압적이고 불통이다. 환자가 질문하면 무성의한 답변이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다. 이에 참다 못해 필자는 한때 용기를 내어 면전에서 이를 지적, 진료 의사의 변명과 같은 사과를 받기도 했다. 그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유효한 지 의심만이 가득하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하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으름장에 맞춰 집단행동 수위를 높이고 최근 16개 시도의사회 차원의 동시다발 집회를 열었다. 혹독한 코로나19 시국에서도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사들의 파업은 엄청난 후폭풍을 야기했다. 이번에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회원 86%가 단체행동 의사를 밝혔다. 이는 어떠한 이유를 내세워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국민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심지어 의사가족도 거의 같은 비율로 찬성함이 드러났다.

의대를 지망하려는 인재들은 중·고등학교에서 거의 공부의 신에 해당할 정도의 학력 소유자다. 그들은 남들보다 늘 우위에 있어서인지 부모와 교사들에게 인성교육 대상에서 예외적으로 간주된다. 여기엔 ‘공부만 잘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뿌리 깊은 의식과 교육가치가 크게 작용한다. 문제는 그들이 인성교육 사각지대에 놓이도록 거의 방치하는 인재 관리다. 필자 또한 오랜 대학입시 지도를 통해 의대 진학에 성공한 학생들의 성향을 잘 안다. 나눔과 배려, 협력의 공동체 의식 결여와 일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인성으로 똘똘 뭉쳐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목표에서 볼 때는 거의 이방인이다.

정부는 의대 광풍에 의해 현재 수많은 N수생을 양산하고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상황을 심각하게 숙고해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 내수용 의사 양성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의대 총정원(5천58명)이 SKY대학 이공계열 총정원(4천882명)보다 많아지는 것은 심각하게 편향된 정책이다. 이제는 디지털 대문명을 주도할 기초과학과 첨단기술 분야 인재 육성에 관심과 정책을 서둘러 보강해야 한다. 국가 미래는 의사 양성보다 더 중요한 이공계 인재들 육성이 더 핵심이라는 사실에 국가 교육정책의 총력을 모아야 한다. 또한 학교는 보다 철저한 인성교육으로 인재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공리와 의무를 실천하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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