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집이라는 이 평범한 단어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없이 복잡한 감정을 내포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이자 언제든 돌아가 편히 쉬는 유일한 곳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남보다 못한 사람들, 벗어나고 싶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가족은 자의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뜻이 맞지 않거나 어느 한 사람에게 과도한 책임이나 희생을 강요할 경우 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다시 안 보면 그만인 남과는 달리 쉽사리 연을 끊어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가족이 그렇다. 한때 누구보다 화목하고 단란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살을 파고드는 족쇄가 돼 고통을 준다.

20대 초반의 청년 길버트는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온 지 오래다. 그 시작은 10여 년 전 지하실에서 자살한 아버지 사건이 출발점이었다. 유서도 없이 떠나 버린 그날의 충격으로 엄마는 먹고 자는 생활만 반복 중이다. 그 결과 체중이 200㎏ 이상으로 불어나 이제는 움직이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큰형은 대학 졸업 후 집에 발길을 끊었다. 누나는 다니던 식당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실직한 상태다. 사춘기 막내 여동생 엘렌과는 사사건건 충돌을 빚었다. 

그리고 어니. 어니는 지적장애를 안고 태어난 데다가 10살을 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시한부 판정도 받았다. 그러나 곧 18번째 생일을 앞뒀다. 의사는 언제든 어니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길버트는 동생이 오래 살길 바라면서도 어떨 땐 그 반대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길버트의 수입이 전부인 상황에서 인근에 들어선 대형 슈퍼마켓은 그가 근무하는 식료품점에 큰 타격을 줬다. 이처럼 길버트의 인생엔 어느 하나 화창한 구석이 없었다. 이런 암담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가족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베키라는 여성이 마을에 등장한다. 할머니를 모시고 캠핑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녀는 자동차 고장으로 잠시 길버트의 동네에 머물게 됐다. 밝고 편견 없는 베키는 가족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에 억눌린 길버트의 내면을 어루만지며 지친 그의 마음을 달래 줬다. 이 만남은 그를 변화시켰다. 가족을 사랑하긴 하지만 멍에이자 치부로 여긴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다소 느리긴 하지만 어니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격체임을 깨닫고, 동생 문제로 갈등을 빚은 엄마와도 화해한다. 또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자포자기 심경에서 벗어나 마음의 황무지를 건너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간다.  

1994년 개봉한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는 「무엇이 길버트를 갉아먹는가(What’s Eating Gilbert Grape?)」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제목처럼 청년 길버트의 인생은 가족에게 포박된 듯 보인다. 그러나 길버트를 옭아맨 실체는 사실 포기 상태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결국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체념이 자신을 결박했던 것이다. 그 마음을 걷어내자 암담한 현실과 가족을 향한 원망 대신 서로 고마워하고 또 사과하며 사랑을 확인했다. 이 작품은 가족의 의미와 함께 절망은 포기하는 마음에 그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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