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낭비의 낭이 같은 한자인 물결 낭(浪)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두 단어의 공통점이지만 같은 한자를 쓰는 게 영 어색하지만은 않다.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성과 이상을 쫓으며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를 뜻한다. 이에 낭만을 즐기려면 낭비가 필요하고, 낭비를 하지 않으면 낭만이 없다.

하나 대부분 사람들은 낭만과 등진 채 낭비를 줄이고자 효율을 따진다. 

어느 해외 유명 유튜버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꼽았다. 이유 가운데 하나가 능력주의를 내세운 강한 사회 압력이다.

한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초경쟁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사람이 쏟아내는 건물 빛 덕분에 도시의 밤은 아름답다.

그 건물 속 어느 젊은이는 연애를 시간과 감정 낭비라고 여긴다. 비싼 취미라 생각해 연애를 해도 깊지 않고 가볍게 즐긴다. 심지어 따라오는 비용과 책임에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유별난 사람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나날이 곤두박질치는 출생률이 증명한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50일 채 남지 않자 각 당과 후보자들이 표심을 사로잡을 공약을 쏟아낸다. 

이 가운데 경제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공약들이 눈에 띈다. 국가가 거두는 세수가 52조 원이나 덜 걷혀 나라살림이 65조 원이나 모자라는 마당에 실현 가능한 공약인가 의심부터 드는 약속들이다. 공약을 지키겠다고 하더라도 공약에 따른 사업 추진 비용은 결국 세금으로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이에 낭비를 줄이려고 연애도 결혼도 뒤로 미뤄 둔 젊은이와 금배지라는 낭만을 쫓는 정치인의 공약에 괴리감이 느껴진다. 

지난 14일 법원은 용인경전철 사업을 추진한 전임 용인시장과 책임자들의 과실을 인정했다. 용인시가 이들에게 214억6천만 원을 시에 지급하도록 청구까지 하라고 했다.

용인경전철은 부풀린 수요예측으로 매년 4천억 원 이상 손해를 보는 지방자치단체의 민간투자 사업 실패 사례로 꼽는다. 무분별한 사업 추진으로 생긴 적자는 오랜 기간 지방재정에 큰 짐으로 남는다. 

단체장의 치적과 인기라는 낭만을 쫓으며 추진한 사업이 혈세 낭비로 이어진 책임을 문 판결이다.

지자체장과 국회의원은 시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다. 본인 미래만 생각한 공약이 아닌 끝까지 책임지고 이뤄 낼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을 뽑은 일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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