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갈릴까요? 어쩌면 ‘생각의 차이’에서 갈리는 건 아닐까요.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했어도 어떤 이는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지만, 어떤 이는 그것을 계기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후자의 삶을 살까요?

어느 목사님의 설교 내용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한 소년이 골목길에서 노는데 친구가 장난 삼아 던진 돌이 그만 소년의 한쪽 눈에 명중했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에 맞은 눈이 크게 다쳤고, 나머지 한쪽 눈도 못 쓰게 돼 앞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의 부모님이 비통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 소년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제가 눈은 잃었지만 아직 머리는 남아 있어요."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산 이 소년이 자신의 말대로 ‘머리’가 남아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로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이자 국무위원을 지낸 헨리 포세트입니다.

만약 소년이 그 사고를 두고두고 떠올리면서 돌을 던진 친구를 원망하며 살았다면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요? 사실 사고는 이미 벌어진 ‘사실’이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사고를 계기로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를 결정하는 것뿐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상황의 ‘긍정적인 해석’, 즉 ‘벌어진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태도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국내 첫 시각장애인 국비 유학생이었던 서주영 씨입니다.(조선일보 2021년 5월 18일)

그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12세에 시력을 잃어 눈앞 사물만 흐릿하게 구별하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랬던 그가 성균관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국비 유학을 떠났고, 그로부터 7년 후 박사가 돼 미 일리노이대 조교수로 임용되는 기적을 이뤘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던 소년이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급격히 시력이 떨어져 맹학교로 전학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절대 직업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의 80~90%가 안마사를 해요. 각자 적성과 재능이 다를 수 있는데 안마사 아니면 사회복지, 특수교육, 종교인처럼 획일화된 직업에 나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맹학교 시절, 한 선생님의 "너희는 수학 수능 5등급 맞는 걸 1등급으로 여기면 된다"는 말에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생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안내견과 함께 택시를 타려다 승차 거부를 당하기도 했고, 식당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가 다닌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는 그의 통계학 수업을 위해 800만 원씩이나 들여 점자 교재를 만들어 줬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는 마침내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보통 1시간이면 될 것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3~4시간을 공부해야 하는데, 자신이 개발할 기술을 통해 그런 정보 습득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벼룩은 자기 몸의 100배 이상이나 높이 뛸 수 있지만, 만약 상자에 가둬 놓고 키우면 천장에 자꾸 부딪히다가 결국 알아서 낮게 뛴다는 곤충 실험이 있습니다. 천장의 존재로 인해 스스로가 바깥세상으로 나가겠다는 희망을 포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서주영 씨나 헨리 포세트 교수 모두 절망의 상징이던 ‘벼룩의 천장’을 과감히 깨고 밝은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오는 기적을 이뤄 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후 삶을 긍정적으로 설계하고 도전하는 태도였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듯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고통과 시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시련까지도 긍정적으로 해석해 내는 태도가 결국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열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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