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60+기후행동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60+기후행동 공동대표

겨울비가 내린다. 전에 없던 일이다. 며칠 따뜻하다 이내 쌀쌀해지는 날씨에 어리둥절하며 출근하는 시민 발아래 명함이 무수히 떨어진다. 국회의원선거가 50일도 채 남지 않자 후보들은 조바심이 커진다. 새벽같이 나온 선량 후보들이 방긋 웃으며 발길 바쁜 시민에게 저마다 명함을 내미는데, 거드름 피우던 사람인데 비 맞으며 굽실거리는 모습이 어색하다. "언제 봤다고 반가운 척하나?" 날씨까지 변덕스럽다. 기후위기 때문일까? 4년 후 모습은 이맘때와 비슷할까?

작은 명함으로 자신을 제대로 알릴 방법은 없다. 시민들은 후보가 몸담은 정당을 옷으로 확인하거나 명함에 깨알같이 적은 글씨를 살펴보는데, 4년 전 명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이 절반인 명함에 경력을 최선으로 내세우는 후보는 주민이 관심 가질 개발을 성사하겠다고 호언장담을 늘어놓았지만, 당선 이후 4년 동안 어떤 일을 어떻게 헤쳐 갈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법과 제도를 유권자와 충분히 논의하며 마련하겠다는 약속은 없다. 유권자들은 받은 명함을 간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비에 젖은 바닥에 버린다.

4년 전 이맘때, 지하철 입구에서 명함 돌리는 후보의 손이 차가워 안쓰러웠다. 요즘은 지하철 안까지 들어와 명함을 내민다. 당과 이름을 알리는 점퍼는 방수 기능이 있는지 모르는데, 얇다. 추위에 고생하는 후보를 배려하기로 선거법이 양해한 걸까? 그나마 다행히 올 겨울은 덜 춥다. 서태평양의 엘니뇨현상이 전에 없이 심해졌다는데, 그 여파인지 장마처럼 비가 이어진다. ‘겨울장마’라는 분석이 나왔다.

4월 10일, 목련이 필까? 박목월이 ‘4월의 노래’를 쓸 무렵 목련은 분명히 4월에 폈지만 요즘 명확하지 않다. 3월 중순에 피더니 4월이면 진다. 경칩은 멀었는데, 개구리는 수난을 입는다. 얼음이 약해지자 낳은 알 덩어리가 느닷없는 한파로 얼어붙는다. 따뜻해지니 남도의 두꺼비는 알을 낳았다. 봄꽃도 개화 시기를 놓치고, 개구리도 뒤죽박죽이다. 동물 생태계는 허약해지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다. 감기가 떠나지 않는다. 목련이 필지, 질지 점치기 어려운 4월, 김포시는 서울에 편입될까? 오리무중이다.

4년 뒤에도 후보들은 지하철 입구에서 출퇴근 시민을 맞을 것이다. 그 무렵 기후위기를 부추길 개발은 선량 후보의 공약에 포함될까? 그렇지 못할 공산이 크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동과 남아시아를 휩쓴 기상이변이 우리나라를 피할 리 없지 않은가. 지난해 호남지방을 힘겹게 했던 가뭄은 올해 어느 지역에 영향을 줄지 예견하기 어렵다. 1년 강우량을 하루 만에 퍼붓는 수해, 폭풍과 해일이 빈발하는 태풍이 이번에 당선될 국회의원 임기 내에 가혹하게 닥치지 않을 거라 단정할 수 없다. 4년 뒤 선량 후보는 어떤 명함을 준비해야 할까?

거리에 뒹구는 요즘 명함은 기후위기 대응을 몰라라 하지만, 4년 뒤 시민은 명함 내미는 후보를 어떻게 바라볼까? 겨울장마를 맞는 올 후보들은 4년 뒤를 염두에 둘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인천시청 광장 앞의 ‘기후위기 시계’가 남은 시간은 5년 150일이라고 주장한다. 5년 뒤 위기를 몸으로 느낄 시민은 올해부터 절박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기후유권자’로 행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허송세월로 보내면 4년 뒤 내 아이의 온전한 내일은 1년 남짓이라는데, 가만히 있을 유권자가 어디 있는가?

임해도시 인천은 기후위기를 먼저 받는다. 태어나는 2세에 1억 원을 지원하면 뭐하나? 생존이 불투명한데. 이미 휘황찬란한 송도신도시에 130층 초고층 빌딩이 추가로 서면 뭐하나? 상승한 해수면이 넘나들 텐데. 자신을 기후유권자로 인식하는 시민은 4년 뒤가 아니라 올해부터 후보를 꼼꼼히 살필 것이다. 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화 시절보다 1.5℃ 이상 오르면 미래 세대는 파국을 맞을 거라고 기후학자는 일찍이 경고했는데, 지난 1년 벌써 1.5℃ 상승했다. 4년 뒤 내 아이의 생존을 염려하는 기후유권자는 명함이 아니라 후보의 진정성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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