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재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이훈재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다. 이해당사자인 전공의와 의대생 반발이 거세며, 그 여파에 환자들의 고통도 커진다. 이에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 조정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는 비상 상황이다.

필자는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으로서 지역 필수의료 과제 해결을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고, 대학에서 의학교육 보직을 맡기에 급격한 정원 증원의 역작용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 위기 상황이 잘 수습돼 지역 필수의료 기반은 굳건해지고, 의사들이 마음껏 진료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지난 6일 정부는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천 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또 확대하는 입학정원을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집중 배정하고, 비수도권 의과대학들이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공개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지만, 인천시민에게는 상당히 불리하고 불합리한 면이 있다. 

인천은 서울, 경기도와 함께 수도권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필수의료 관점에서 만큼은 인천은 지방이 겪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가졌다. 서해5도와 강화 산간지역 등 우리나라에서 필수의료 접근성이 가장 낮은 접경지역도 포함한 인천은 대표적인 필수의료 취약지역인 것이다. 

지리적 특성인 서울과의 근접성 또한 오히려 단점이다. 환자는 물론 의료인력의 서울 유출이 아주 쉽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낮추고 필수의료 기반을 위협한다. 반면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정책과 제도의 배려 대상에서 배제되곤 한다. 인천 의과대학들이 지역인재전형으로 학생을 뽑지 못하는 게 그 예다. 이런 역차별 문제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인천의 두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현재 89명이다. 인천보다 인구가 적은 대구는 네 개 의과대학에서 302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인천의 의과대학 정원이 인구 대비 아주 적은 수준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대구지역 의과대학은 지금도 40% 이상을 지역인재로 뽑을 수 있지만, 인천의 의과대학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극상위권 학생들을 같은 조건에서 뽑아야 한다. 그 결과, 인천의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이 지역 출신 고등학생은 매년 5명이 간신히 넘을 뿐이다. 

의과대학 졸업생은 출신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지역인재를 선발해 잘 가르쳐 역량을 배양하고 필수의료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일은 의과대학 책무의 본질이다. 따라서 지역인재 선발은 의과대학의 사회적 책무 이행의 전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할 때 필자는 두 분의 멋진 인천 의사선생님 사례를 언급한다.

한 분은 필자의 제자이기도 한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여자 전공의 오수지 선생님이다. 이 분은 인천에서 태어나 줄곧 인천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모교 부속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로 꿈을 키운다. 흉부외과는 필수의료의 핵심 전공분야인데, 의료사고 등의 위험이 크고 업무는 고되어 젊은 남자도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면 선택이 쉽지 않다. 

수도권 전체로 볼 때도 흉부외과를 전공하는 여자 의사는 서너 명이 안 된다고 하며, 오수지 선생님은 인하대병원 흉부외과에 17년 만에 지원한 전공의이기도 하다. 서울지역 더 큰 병원도 얼마든지 환영받고 갈 수 있었겠지만, 자신이 성장하고 혜택을 받은 인천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세운 것이다. 요즘도 수십 시간 연속 쪽잠만 자며 환자를 돌보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 

또 다른 분은 의료계에서 널리 존경받고 계신 이두익 백령병원장님이다. 원장님은 인하대병원 의료원장과 마취통증의학 분야 학회장을 역임하신, 그야말로 의료계 최고 원로다. 정년퇴임 직후 의사로서 첫 출발을 하셨던 백령도로 가셔서 10년째 섬마을 주민의 주치의로 헌신하고 계신다. 

40여 년 전 백령도에서 군의관 시절을 보낸 이두익 원장님께서는 사모님을 만나고 의사로서 첫 번째 봉사상을 받은 무대인 백령도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신다. 충분히 예우받을 기회를 마다하고 젊은 의사 시절의 초심을 찾아 백령병원장을 자원하셨다. 필자는 이두익 원장님을 인천의 시민의사라고 칭하고 싶다. 

그런데 이 두 분 의사선생님의 지역사회 헌신은 정책제도의 산물이 아닌 특별한 소신과 철학에 기반했다. 의사라고 해서 소신과 철학을 강요할 수는 없으며, 그런 접근으로 지역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천의 의과대학에서도 고향의식이 있고 인천을 기반으로 의술을 펼칠 꿈을 꾸는 지역인재를 뽑아야 한다. 지역인재전형은 인천 중고생들이 겪는 의과대학 입학 기회의 역차별 문제도 완화하고, 교육 여건 등 정주환경 개선에도 커다란 긍정 효과를 낸다.

인천 의과대학이 지역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관련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인천의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다. 물론 의과대학은 다양한 전형을 통해 입학한 의대생에게 인천에 대한 이해와 책임의식이 깊어지도록 좋은 교육을 해야 한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 인천의 의과대학 학생 선발과 좋은 의학교육에 대해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특별한 마음으로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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