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두 이름을 보면 자연스레 흑인 민권운동이 떠오른다. 미국 내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주장한 이들은 흑인 인권 향상에 크게 기여한 양대 산맥이다. 두 거목과 함께 1960년대 후반 활동한 프레드 햄프턴이란 청년 또한 인종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검은 표범을 상징물로 내세운 블랙팬서당의 일리노이주 지부장이었던 대학생 프레드는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런 청년이 자택에서 살해당한다. 임신한 약혼녀 그리고 여러 명의 당원들이 함께 잠든 새벽, 느닷없이 총성이 울린다. 무려 99발의 총알이 빗발친 그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21년 개봉한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실존 인물인 프레드 햄프턴의 짧지만 강렬했던 행적을 따라간다. 

1960년대 미국은 혼란스러웠다. 냉전으로 세계가 이분화된 가운데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발생했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명분 없는 베트남전쟁 참전 반대 시위가 확산됐다. 1964년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한 민권법이 통과됐으나 이는 별다른 효과도 보지 못한 가운데 인종 갈등을 증폭시켰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의 폭력적인 테러가 빈번히 발생했고,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5년과 1968년에 암살됐다. 

프레드가 활동한 블랙팬서당은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무장 단체로 흑인 보호를 위해 창당했지만 점차 세력을 확산해 억압받는 소수를 대변하는 연합단체로 커 나갔다. 이들은 사상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오주의에 경도됐는데, 냉전 상황 속에서 블랙팬서는 정부에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하여 FBI는 블랙팬서당을 와해시킬 계획에 착수한다. 

정부는 당시 지도자로 급부상하던 프레디 햄프턴을 소위 ‘블랙 메시아’로 규정하고 그를 끌어내릴 배신자 유다를 조직 내부에 심기로 한다. 이 계획에 꼭두각시로 투입된 인물이 바로 흑인 청년 윌리엄 오닐이다. 오닐은 FBI 배지를 도용해 차량 절도 범죄를 저질러 7년형을 받을 운명 앞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감옥에 갈지, 아니면 블랙팬서당에 첩자로 잠입해 FBI의 정보원 노릇을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후자를 택한 오닐은 비밀 정보원인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프레드와 블랙팬서 활동에 이끌리게 된다. 

FBI는 블랙팬서도 KKK와 다를 바 없는 강경 폭력단체라 했지만 이들은 무료 급식소 운영과 의료 지원 활동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을 도왔다. 또 프레드가 말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철폐 메시지에도 공감하는 바가 컸다. 이렇게 오닐이 프레드와 당의 활동에 동화될수록 FBI의 압력도 높아졌다. "민중이 있는 곳에 힘이 있다", "혁명가는 죽일 수 있어도 혁명은 죽일 수 없다"고 말한 젊은 리더 프레드는 끝내 오닐의 배신으로 1969년 12월 4일 새벽, 불법 무기 소지 수색을 빌미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21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프레드 햄프턴의 혁명적 활동을 조명한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흑인 민권운동가의 유산을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과 함께 어두웠던 시대의 아픔을 잘 보여 준다. 오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꼭두각시로 투입된 그의 불안과 자책을 통해 편협한 시대가 자행한 참혹한 비극을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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