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기호일보 주필이 40년 기자생활을 정리한 칼럼집 「열흘 붉은 장미 없다」를 펴냈다.

올해는 그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40년을 맞는 해다. "‘사회의 막힌 곳을 뚫고 굽은 곳을 펴겠다’는 포부로 늘 스스로에게 ‘네가 기자냐?’를 되뇌며 매일매일 자성(自省)하는 자세로 기자생활을 해 왔다. 인생은 문틈으로 얼핏 내다보아 백마가 벌판을 달려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빨리 지나간다(人生如白駒過隙)는 말이 실감난다"고 책 서문에 적은 대로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40년의 시간이 지났다.

1984년 경인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해 인천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인천신문 초대 발행인과 주필을 역임했다. 그리고 기호일보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과 주필을 맡은 그는 후배들을 만나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이 있다. "앉으면 기사 쓰고, 걸으면 취재하고, 누워 있으면 기사를 구상하라."

기자는 늘 깨어 있고, 늘 불의와 부정에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권력에는 달걀로 바위치기의 무모함일지라도 좌시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무서워 피할 것 같으면 아예 기자를 그만두라고도 한다.

또 기자가 돈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기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배고픈 기자(飢者)와 속이는 기자(欺者) 그리고 쓰는 기자(記者)가 있다. 쓰기 위해 남을 속이거나 배고파서 펜을 꺾을 거라면 차라리 그만두라."

원론적인 얘기지만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존심을 지키는 기자가 되라고 한다. 흰 머리칼과 눈썹을 올린 부드러운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매서운 질타이자 지침서다.

40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가 접한 현실과 역사 인식을 「열흘 붉은 장미 없다」에 총 151편의 칼럼으로 녹여 냈다. 원고지만 따져도 3천 매가 넘는 압도적 시간의 무게도 담겼다. 1991년 청와대 출입기자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제주도 한소(韓蘇)정상회담은 물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한중(韓中)수교 등 급변하는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을 헤집으며 동서문제(東西問題)와 유엔, 한중 관계 등 국제 정치에 대한 기자의 시각도 살펴볼 만하다.

또 청와대에서 지켜본 국가권력의 흥망성쇠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 인식도 책에 고스란히 품어냈다.

특히 부동산 광풍으로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는 가진 자들의 탐욕에 대해서는 좋은 풀이 있으면 혼자 먹지 않고 동무들을 불러 모아 사이 좋게 함께 풀을 뜯어먹는 시경(詩經)의 ‘유유녹명 식야지평’을 끄집어내 상생의 덕목을 일깨운다.

그의 호(號) 녹명(鹿鳴) 역시 상생보다 지나친 욕심으로 화를 부르는 세상의 일탈을 꾸짖는 외침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열흘 붉은 장미 없다」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지침서다.

한동식 기자 dshan@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