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어르신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운동과 식사를 포함한 규칙적인 생활, 미리 걱정하거나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 삶의 방식과 더불어 이것을 핵심으로 꼽는다. 바로 따뜻한 관계성 유지다. 가족, 친구, 지인을 비롯해 자연과의 친밀하고도 긍정적인 교감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한 장수의 비결로 통한다. 

하지만 때로 우린 인간관계를 끊고 싶을 때가 있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받는 상처와 스트레스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한 채 살다 보면 한동안은 참 평화가 찾아온 듯하다. 그러나 이내 알게 된다. 그런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를. 오늘 소개하는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저마다의 상처로 마음을 닫은 세 사람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이야기다.

1970년 12월,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분주하다. 가족과 보낼 생각에 들뜬 학생들 사이로 앵거스가 보인다.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지만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앵거스 곁에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한편, 고대 역사를 가르치는 꼬장꼬장한 선생님 폴은 이번 연휴도 홀로 학교에서 보낼 생각이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이 선생님에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였다. 사실 그는 30여 년 전, 대학에서 큰 오해를 받아 상처 입은 마음을 회복하지 못한 채 도피하듯 바튼 아카데미로 들어온 은둔형 인간이다. 

그런 두 사람이 뜻하지 않게 연휴를 함께 보내게 된다. 앵거스가 집안 사정으로 집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최근 아들을 잃은 급식 주방장 메리도 학교에 남는다. 

이런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 연휴가 악몽으로 변한다. 원칙을 내세워 끊임없이 학생을 통제하려는 선생님과 틈만 나면 말썽을 부리는 학생 그리고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주방장은 각자 자기 처지만 내세워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고 상대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2023년 말 개봉한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작품 속 계절적인 배경 때문에 크리스마스용 가족영화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사실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만 이 작품을 좀 더 들여다보면 훈훈한 오락영화 이상의 많은 맥락을 내포했다. 비록 노골적으로 강조하지는 않지만 1970년 사립 명문 학교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통해 베트남전쟁, 인종차별, 빈부격차 같은 사회문제와 아픔을 짚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힘주어 말하는 것은 공감, 이해, 사랑이다. 선생님 폴은 "대부분의 인생은 닭장의 횃대처럼 더럽고 옹색한 거야"라고 작품 초반에 언급한다. 하지만 그렇게 쓰디쓴 인생이라도 날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시련과 고통에서 벗어나 희망과 기쁨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전한다. 

우리는 누구도 홀로 살 수 없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깨닫는 순간은 결국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님을 느끼는 때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이해와 공감을 통해 자신의 벽을 허물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유머와 위트를 버무려 따뜻하게 그린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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