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상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최윤상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나에게는 개인적인 뜻이 있어 시청을 되도록 꺼리는 콘텐츠가 있다. 일반인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의 일상을 편집한 영상을 보면서 연예인과 전문가 패널들이 반응을 나누고 설루션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은 최대한 시청을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아직도 기억난다. 식당 운영을 미숙하게 하는 사장이 등장하면 국내 최고 프랜차이즈 권위자인 백종원 대표가 나서서 그 부족함을 꾸짖고 사장과 갈등을 겪다가 설득에 성공하는 모습. 그렇게 성공적인 설루션을 바탕으로 식당이 대박집으로 거듭나거나, 앞에서는 설루션을 참고하는 척하다가 결국은 전과 같이 돌아간 식당이라든지. 이번 주는 어떤 ‘빌런’이 나올까 기대하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꾸짖는 백 대표 모습을 보면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켠 것처럼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 입에서 ‘도대체 어떤 정신머리로 사람 먹는 음식에 저렇게 장난을 치나’ 혹은 ‘저렇게 조언해 줬는데도 못 따라가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나 ‘금쪽이 상담소’도 같은 이유로 감정을 이입하며 즐겨 봤다.

그러다가 이러한 콘텐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청을 자제해야겠다고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린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딩엄빠’와 대치동 1타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설루션을 주는 ‘티쳐스’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반인 예능은 말 그대로 예능 프로그램이니 일반인들의 삶을 관찰하며 연예인들과 다른 신선함을 주고, 전문가 조언을 통해 내 삶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프로그램 목적이 아닐까 했던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오히려 사람들은 비난할 대상이 필요한데, 연예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봉쇄되기 시작하며 그 대상이 일반인으로 넘어간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미숙한 일반인의 행태를 소위 업계 전문가라는 사람이 비판하면 그 권위에 힘입어 일반인을 마음껏 비난해도 된다는 방송국과 시청자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 보였다. 갈수록 자극적인 소재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문제 있는 일반인’들을 출연자로 섭외하고, 출연자에 대해 격해지는 댓글 반응을 보면서 그것을 느낀다. 어느 순간 댓글에서 사람들의 반응처럼 ‘옳소’ 하며 함께 돌을 던지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고, 그때부터 이러한 콘텐츠 시청을 최대한 자제한다.

물론 이들은 TV 출연을 이유로 출연료를 지급받을 테고, 대중적인 인지도도 키울 수 있다. 그 목적으로 TV 출연을 원하는 일반인도 많다고 안다. 

다만, 돈을 받고 조그마한 유명세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것이 일반인을 마음껏 욕하는 자유이용권이나 면죄부가 되는가. 우리도 모든 부분에서 완벽할 수 없고, 남들을 욕한다면 언젠가는 그 돌이 나에게 날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방송국도 문제다. 거의 모든 주요 방송국에서 일반인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매운맛’ 경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소재는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해 가고, 가끔은 사회적 약자이기도 한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는 일반인을 출연시킨다. 과연 방송국 제작진이 진정 이들을 돕는 길은 방송 출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소재와 출연자 선정에 인간적인 고뇌는 찾기 힘들고, 화제성과 유튜브 조회 수에 대한 의지만이 느껴진다. 지금의 행태를 보면 시청자는 갈수록 더 자극적인 소재를 원할 것이고, 방송사들은 다른 방송사와 화제성 경쟁을 위해 더 상상하기 힘든 소재를 프로그램으로 제작할 것이다.

TV 속에 나오는 일반인들은 말 그대로 일반인이다. 우리와 같이 일상생활을 보내고, 지하철을 타거나 카페에서 마주칠 수 있는 우리의 이웃이 아닌가. 우리가 자정하며 이러한 자극적인 콘텐츠 소비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