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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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는 부의 세습을 막아 이를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그래서인지 상속세를 낮추자는 주장은 부자 감세라는 비판 속에 함부로 꺼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하지만 최근 상속세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 대한민국 경제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며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개선되고, 최근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인해 그간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상속세가 이제 서민 세금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현행 상속세는 과세표준 1억 원 이하 10%, 5억 원 이하 20%, 10억 원 이하 30%, 30억 원 이하 40%, 30억 원 초과 50% 등 5단계 누진세율을 적용해 운용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상속세가 있는 24개국 중 한국의 최고세율(50%)는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40%)과 독일(30%) 등 주요 국가들은 물론이고 OECD 평균(15%)보다도 크게 높았다. 특히 일본이 상속재산 평가 시 공시지가를 적용하는 데 반해 우리는 시가를 기준으로 하기에 실질적인 상속세 부담은 사실상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최대 주주에 대한 할증까지 적용하면 최고세율이 60%까지 높아지는 것은 덤이다.

1996년 제정된 상속·증여세법은 2000년 한 차례 개정을 끝으로 지금껏 24년간 유지됐다. 개정 당시 최고세율은 45%에서 50%로 올랐고, 최고세율 과표 구간은 50억 원 초과에서 30억 원 초과로 내려가며 사실상 상속세 부담을 대폭 가중시켰다. 이는 IMF 외환위기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한편, 국민들이 소유한 개별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실태를 반영한 것이다. 상속세 일괄공제와 배우자 공제가 각 5억 원으로, 상속재산이 최소 10억 원은 넘어야 상속세가 발생했기에 여전히 상속세는 곧 부자 세금이라는 공식이 유효했다. 특히 부동산 R114에 따르면 2000년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2억382만 원이라 하니 서민들에게 상속세는 먼 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당시 9천775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22년에는 3만2천886달러로 3배 넘게 늘어나는 등 소득이 크게 증가했고,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평생 모은 재산이 집 한 채임에도 이를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면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인협회가 KB 월간주택가격동향, 통계청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 전체 수도권 아파트 638만1천 가구 중 상속세를 내야 하는 가구는 올해 77만2천 가구로 12.1%를 차지한다고 나타났다. 문제는 향후 아파트값 상승과 가구 증가 속도가 최근 5년간(2019~2023년) 연평균 상승률만큼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이 수치는 크게 증가, 2030년 34.1%로 뛴 후 2023년에는 60.3%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이 수치들 모두 아파트 가격만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별도 보유 중인 부동산이나 금융자산까지 감안하면 상속세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청년세대들이 내 집 마련은커녕 아이 낳기조차 꿈꾸지 못할 정도로 각박한 헬조선에 살고 있음을 고려할 때 부모세대들이 상속을 통해 자녀들에게 최소한의 자립 기반을 만들어 주도록 상속세 개편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여기에 기업 승계 시 최대 주주에게 부과하는 60%라는 할증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회사 주식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경영권이 위협받는 건 우리 경제의 암울한 징조다. 상속세 부담 탓에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낮게 유지된다는 뜻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그 단적인 예다.

그래서인지 정부가 중산층과 기업들의 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상속세 개편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의미 있다. 상속총액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 아닌 상속자 개인의 유산취득분에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도입과 함께 과표구간과 세율 현실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2000년 개정된 상속세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다. 상속세 개편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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