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경기본사 사회부장
안경환 경기본사 사회부장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코로나19 후유증이다. 기저질환도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들어가셨고, 그렇게 몇 달을 계시다 결국 눈을 뜨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아침 일찍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위중하시다"란 말을 듣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숨을 거두신 건 이틀 뒤다.

장례 준비를 해야 하는데 무지했다. 가족에게 알리고, 휴대전화로 관련 검색을 하다 부모님 집에서 가까운 장례식장으로 정했다. 병원에서 사망 확인과 같은 절차를 마치고 장례식장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장례식장에선 말싸움도 벌였다. 코로나19 환자는 운구 절차가 다르단 게 이유다.

여차여차해서 빈소를 차렸지만 수의, 관, 유골함, 음식, 제사 방법과 가격을 결정하는 일이 이어졌다. 화장장과 봉안당 결정도 남았다. 이 과정에 친·인척과 지인에 연락도 해야 한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장례를 치르긴 했지만 맏상제로는 처음이다. 정작 슬플 겨를이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결정이 상주(喪主) 몫이다.

얼마 전 슬픈 일이 또 일어났다. 김수광 소방장, 박수훈 소방교의 순직 사고다. 지난 1월 경북 문경시 소재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내부 인명 수색 중 건물이 붕괴하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김 소방장은 28세, 박 소방교는 36세다.

이들의 영결식은 지난달 경북도청장으로 치렀다. 유가족과 동료 소방공무원, 경북도지사와 소방청장,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이 참석했다. 김 소방장과 박 소방교에는 1계급 특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또 경북도지사는 "두 분은 사람을 구하는 걸 사명으로 여기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현장 근무환경을 더 살피겠다", "소방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용납하지 않겠다"와 같은 약속을 쏟아냈다.

이상한 점은 상주 역할을 할 장례위원장이다. 소방공무원 영결식에 소방청장이 참석했지만 장례위원장은 경북도지사가 맡았다. 다른 광역지자체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역시 2022년 평택 냉동창고 화재 현장을 진화하다 숨진 이형석 소방위·박수동 소방교·조우찬 소방사 영결식, 2021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진압과 구조 임무 도중 순직한 구조대장 김동식 소방령의 영결식 모두 경기도청장으로 치렀고, 장례위원장은 경기도지사였다.

순직 소방관 영결식 땐 항상 당시 소방청장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제 역할은 뒷전으로 밀린 셈이다. "부형(父兄)이 있으되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구나. 어찌 통한한 일이 아니리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알려진 사회 풍자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문구다. 소방조직과 같은 처지로 보인다.

소방조직 비난이 아니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국가다. 1973년 지방소방공무원법이 제정된 지 47년 만인 2020년 4월 지방직 소방공무원을 모두 국가직으로 전환했지만 변한 게 없다. 전국의 소방인력과 장비를 대형 재난에 신속히 투입하는 전국 소방력 동원체계 확립으로 더 많이 출동할 근거만 남겼다. 순직 사고 발생 때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다"며 위로하고, 계급 특전과 훈장 따위를 추서해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소방은 하나의 조직이면서 다른 면에선 그렇지 않다. 일례로 고위직 임용은 소방청장이 권한을 행사하지만 대부분 소방공무원 임용권한은 시·도지사가 갖는다. 경기도의 경우 남·북부에 2개 소방본부를 뒀다. 2022년 기준 남부 8천13명, 북부 3천440명 등 모두 1만1천453명이다. 이 중 남·북부 본부장과 소방학교장 3명을 제외한 1만1천450명의 임용권한을 경기도지사가 행사한다. 전체 소방공무원 6만6천659명 가운데 98.95%인 6만5천960명이 광역지자체 소속인 셈이다.

소방공무원 처우 등을 보장할 예산도 마찬가지다. 2022년 기준 소방청 예산은 2천426억 원 규모다. 반면 광역지자체가 소방공무원에 배정한 예산은 7조1천913억 원으로 30배에 달한다. 대형 화재 현장에서 광역지자체장이 현장 보고를 받고 지휘하는 웃픈 상황도 이 같은 구조 때문이다.

허울 좋은 명패에 불과한 소방관 국가직 전환보다는 회사 옆 한 커피숍엔 걸린 ‘소방관 모든 음료 20% 할인’이란 펼침막 문구가 더 와 닿는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