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
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

우정을 뜻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물고기와 물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수어지교(水魚之交), 간과 쓸개를 내놓고 보일 정도로 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를 간담상조(肝膽相照)라 한다.

서로 거역하지 않는 친구를 막역지우(莫逆之友), 금괴와 난초처럼 귀하고 향기를 풍기는 친구를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했다. 어릴 때부터 대나무 말을 같이 타고 놀며 자란 친구를 죽마고우(竹馬故友), 친구 대신 목을 내어놓을 수 있을 만큼 신뢰가 깊은 사이를 문경지우(刎頸之友)라고 한다.

인하공대 1학년 시절, 교양학부 철학 담당 김석영 교수님이 떠오른다. 정년을 앞둔 교수님은 첫 강의 시간에 친구를 화두로 꺼냈다. 당신은 이 나이가 됐지만 진정한 벗은 손가락을 하나둘 꼽을 정도라고 눈시울을 붉히시며 ‘뜨머기 우화’를 들려주셨다.

매관매직이 성하던 시절, 벼슬을 하기 위해 시골에서 한양에 올라와 오랫동안 대감 댁의 충직한 종 노릇을 한 두 선비가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출세할 기회가 왔다. 대감 앞에 불려 가면 새 그림을 보여 줄 것이고, 극찬 후 ‘뜸부기’라고 답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벼슬을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뜨머기’라고 엉뚱한 답을 했다. 대감은 자신의 그림을 조롱했다고 대노했다. 옆에 있던 선비에게도 물었다. 그 선비도 똑같이 ‘뜨머기’라고 대답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찬 대감에게 차근하게 그 연유를 아뢰었다.

"외양간의 황소도 어릴 땐 송아지요, 수탉은 병아리, 개구리는 올챙이라는 호칭이 있듯이 대감님이 그리신 뜸부기도 산골에선 새끼 때는 뜨머기라고 하옵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서로 깎아내리고 밟아서는 세태에선 보기 드문 우정이다. 여기에 버금할 만한 우정이 있다. 세한도에 얽힌 추사 김정희와 이상적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41세 때 충청우도 암행어사를 지내며 비인 현감 김명우의 비리를 적발해 봉고 파직시킨 일이 있었다. 안동김씨 세도가였던 김명우는 원한을 품고 호시탐탐 모함해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됐다. 잘나가던 시절 문전성시를 이뤘던 친구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아무도 추사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에 중국으로 함께 사신을 갔던 이상적은 중국에서 많은 책을 구입한 후 유배지인 제주도까지 보내 줬다.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려 영육이 힘들던 추사에게 귀한 책들은 큰 위로가 됐고 힘과 용기를 안겨 줬다. 훗날 추사는 둘 사이의 우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는 말은 논어에서 유래한다. 여름엔 잎이 무성해 모든 나무가 푸르지만, 날씨가 차가워지면 활엽수는 갈색 낙엽으로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하지만 상록수인 소나무는 엄동설한 추위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

추사는 이상적의 우정을 소나무에 비유해 그림을 그리고 세한도라 했다. 김석영 교수님의 붉은 눈시울은 평생 소유하지 못한 추사와 이상적의 전설 같은 우정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그해 가을, 우리 신입생들은 교수님의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영락교회에 추모객으로 참석했다. 영결식은 교수님이 걱정하신 만큼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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