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훈 경기도농업기술원장
성제훈 경기도농업기술원장

반려동물에 이어 반려식물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삶의 단짝이 되는 동무인 ‘반려’는 일반적으로 집안에 들일 수 있게 몸집이 작다. 반면 주로 밖에서 자라는 나무도 반려나무로 만들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딸을 시집 보낼 때 장롱 만들 소재로 심었다고 하지만, 오동나무는 20년 지났다고 해서 장롱을 만들 재목이 되지는 못한다. 사실은 봉황이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기에 집에 봉황이 깃들라는 바람을 담아 집안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능소화는 임금님이 다시 찾아주기를 바라는 여인의 마음이 담긴 나무다. 딸이 중전으로 간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능소화를 양반네 집안에 심었고, 평민들이 능소화를 집안에 심으면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고도 한다. 언감생심 평민이 중전마마가 되기를 바랐다는 죄다. 

자귀나무는 아카시나무처럼 좌우 잎이 서로 마주보며, 낮에는 잎을 열어 햇빛을 모으다가 저녁에는 두 잎을 맞대 증산을 막는다. 이를 보고 부부가 밤에 서로 합쳐 잠을 자는 것을 떠올려 합화수(合和樹),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라고 부르며, 부부간 금실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마당 한쪽에 심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집안에 나무를 즐겨 심었던 우리 조상들이지만,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어 집안에 심지 않았던 나무도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대추나무와 감나무이지만, 부잣집에서는 게으른 나무가 있으면 하인도 게을러진다고 해서 집안에 심지 않았다. 실제로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늦게까지 겨울잠을 자다가 봄이 다 지나갈 무렵인 4월 말이 돼서야 싹을 삐쭉 내민다.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죽은 조상의 혼이 집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해 울타리 안에 심지 않았고, 은행나무의 행(杏)자가 입에다 나무를 심는 꼴로 입안이 바짝 마르면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집안에 은행나무를 심지 않았다. 배롱나무는 매끄러운 나무줄기가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양반집 담장 안에서는 금기였고, 제주도에서는 줄기가 사람의 뼈를, 붉은 꽃은 피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집안에 심지 않았다. 크게 자라는 느티나무와 팽나무도 집에 심지 않았다. 큰 뿌리가 집을 들어 올릴까 걱정했고, 넓게 퍼진 가지가 집안을 그늘지게 한다고 해서 피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나무 한 그루를 심거나 피하면서도 이야기를 담았다. 심을 때는 좋은 뜻을 담고, 심지 말라고 할 때는 나쁜 이유를 만들어서 갖다 댔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수백 년의 세월을 이고 진 나무를 보면 시선이 따뜻해지며 겸허한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누워 자라는 나무에게선 지형의 불리함을 감내하는 인내를, 반으로 쪼개지고도 살아남은 나무에게선 강인한 생명력을 배운다.

올 봄에는 자투리 땅에 작은 반려나무를 한 그루 심어 보면 어떨까. 나보다 오랜 삶을 유지할 나무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자연과 상생하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배울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가 깊어지는 반려나무는 평생 곁에 있는 친구이자 스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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