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 명예교수
김준우 인천대 명예교수

적확(的確)한 비유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안을 이미 익숙한 사물을 들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다. 2017년 외유 중이었던 충북 김학철 전 의원이 국민을 들쥐라고 표현해 한동안 물의를 일으켰고, 이후 조국 전 장관이 본인은 딸을 의대에 부정 입학시키면서 국민들을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로 비유해 더욱 공분을 일으킨 일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선택한 비유가 국민에 대한 본인의 인식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국민을 위한다는 그들을 그토록 오만하게 만들었을까.

들쥐는 더럽고 병을 옮기는,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극혐 이미지를 가진 설치류다. 들쥐는 선두가 강에 뛰어들면 나머지도 맹목적으로 함께 뛰어드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처음 비유한 것은 존 위컴 한미합동사령관이었다. 12·12 사건 당시 기선을 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정치가를 비롯한 학자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고 개탄한 것이다. 근자에는 허화평 전 의원이 들쥐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망친다는 취지의 ‘들쥐 망국론’을 저서에서 언급해 관심을 모았다.

사실 국민 비하 발언은 들쥐 사건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했고,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놓고 민주당 허영 의원이 "국민은 알 것 없다"고 내쳤다. 정치권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노인 비하 발언(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 장애인 비하 발언(국민의힘 허은아, 민주당 이광재), 여성 비하 발언(민주당 최강욱)을 토해냈다.

조국이 든 ‘가붕개’는 원래 편안한 삶을 이루는 국민을, 그리고 상대 격인 용(龍)은 군주를 의미하는 비유다. 이는 평화의 왕정체제를 의미했으나 그의 이중적 언행에 국민들은 용의 영역을 넘보지 말고 그대로 미천한 삶을 살라는 의미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우리가 선택한 이들의 입에서 우리가 오히려 ‘들쥐’, ‘개돼지’ 그리고 ‘가붕개’로 불려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오랜 왕조시대와 일본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길들여진 노예와 같은 백성의 습성, 즉 익숙해진 순종이나 맹목적인 추종이 원인일 수 있다. 또 갑자기 찾아온 해방으로 떠밀려 실시한 서구 민주주의에 대해 준비가 충분치 않은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도 적지 않다.

프랑스 근대 정치학자 알렉시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병폐는 선거로 정치대리인을 뽑은 후 국민들은 다시 선거가 올 때까지 그 정치인의 노예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으레 권력을 쥔 정치인은 권력 유지를 위해 왕왕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선동, 세뇌, 교육으로 국민을 호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력자에게는 국민이 들쥐와 가붕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정치학자는 기간이 정해진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잘못된 정치가를 선출한 것을 깨닫을 때는 이미 감당하지 못할 피해를 본 후라고 지적했다.

의식구조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이를 이행하려면 지각이 있는 지식인들이 국민 의식을 깨우고, 양심이 있는 언론이 이를 따라야만 이들 권력층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는 선거라는 평가 절차가 있기 때문에 깨인 국민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국민부터 일깨우는 일이 시작점인 것이다.

국민은 감정적으로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비판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선거는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꾼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가 필요한 사람을 뽑을 때처럼 나름 평가기준과 적절한 판단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 일의 시작은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하는 지식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 지식인과 국민 그리고 권력자들과 소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이들과 극렬 팬덤의 폭력에 굴복해 지식인들이 펜을 놓거나 언론이 본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숨거나 휩쓸린다면 여전히 그들에게 노예처럼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국민이 깨어 기득권의 의식, 권력 집단의 의식이 바뀌면 그때 사회구조도 변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사회다. 물질의 평등이 아니라 의식의 평등화가 진정한 평등이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정치인을 선거 후에 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감시하고 요구하고 평가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치부하듯이 들쥐나 가붕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제 4·10 총선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선거철마다 그랬듯 또다시 선동, 상대편 비방,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다. 그들이 엎드려 표를 구걸하더라도 냉철하게 그들을 비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만 한다. 선거는 우리 상전을 뽑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 일꾼을 뽑는 행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그들이 우리를 들쥐와 가붕개로 부르는데 언제까지 화만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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