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수행하도록 한 시범사업 보완 지침이 마련됐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 장기화에 대응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넓히고 특정하는 법적 조치다. 이제 모든 간호사는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과 각종 검체 채취, 심전도·초음파·코로나 검사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위임된 검사, 약물 처방, 진단서·수술동의서 등의 기록물 초안 작업을, 전문간호사는 중환자 삽관·발관과 중심정맥관 삽입·관리, 뇌척수액 채취가 가능해진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9일 "진료지원(PA) 간호사 시범사업을 보건의료기본법을 근거로 추진하고, 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보다 더 제도화하는 것까지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공의 의존 체계를 정상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겠다"며 "PA 간호사가 그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에 대해 의협과 보건의료노조는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정부 방침대로 진행될 경우 ‘의사 업무를 간호사에 무제한으로 전가시켜 환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이번 사태와 별개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현행 의료법에는 간호사의 구체적 업무 범위에 대한 직접적 규정이 없다. 일반적으로 간호사 업무는 의사의 진료 보조와 고유 간호업무로 구분되는데, 가장 민감한 건 전자의 경우다. 구체적인 내용과 기준이 아예 없다. 당연히 현장에서 발생하게 될 업무상 과실 책임에 대한 판단도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고자 간호사의 지위와 업무를 독자적으로 규정한 간호법이 지난해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래 놓고 상황이 바뀌니 PA 간호사의 역할을 늘리고 명문화하는 지침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방향은 맞지만 안전판 없는 운행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현행 지침에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병원장 책임"으로 명시했다. 이에 대해 간호사들은 ‘소송이 제기되면 결국 우리가 책임을 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래서 다투더라도 협의 창구까지 닫아선 안 된다. PA 간호사 역할을 확대하든 간호법을 제정하든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를 배제하는 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경시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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