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한국시조협회 고문
김락기 한국시조협회 고문

‘시조(時調)’는 유구한 전통의 우리나라 대표 정형시다. 원래는 말 그대로 시절을 노래한 시절가였으며 음악으로서의 명칭이었다. 그것이 근현대에 와서 문학으로서의 명칭으로 사용됐다. 음악으로서의 명칭은 ‘시조창’과 ‘시조가곡’으로 불린다. 

흔히 알려진 최초의 시조 작품은 고려 말 역동 우탁의 ‘탄로가’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작품이다. 이에 시조의 생성은 통상 고려 중엽 무렵부터로 본다. 물론 향가기원설에 따르면 1천여 년 이전으로 올라간다. 유력한 설인 10구체 향가를 기준으로 보면 약 1천300년 전이다. 그러나 실존 시조 작품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보다도 200여 년 더 앞선 시대에 불렸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있다. 여말 선초 태종의 ‘하여가’ 대답으로 부른 저 유명한 정포은의 ‘단심가’다. 이 시조 작품은 정몽주가 지은 게 아니라 그 이전 삼국시대 백제의 미녀 한주(韓珠)가 지었다는 것이다. 이는 1948년 발간된 단재 신채호의 저서 「조선상고사」 중 ‘안장왕의 연애전과 백제의 패퇴’라는 단락에 나왔다. 백제 개백현(고양 행주)에 살던 장자(長者) 한씨의 딸 한주가 고구려 22대 안장왕을 사모해 지어 부른 연애시라는 것이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 간 혈전이 한창일 때 뺏기고 빼앗던 국경지역에서 맺은 국적을 초월한 ‘사랑가’라는 주장이다. 이는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삼국시대 자료 기록 문헌 「해상잡록」에서 인용했으며,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다고 했다. 

단재는 이를 "위 기록으로 보면 대개 옛사람이 지은 것, 곧 한주가 지은 것을 정포은이 불렀다"고 했으며, "포은의 자작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시조는 나온 지 약 1천500년이나 지났으니 가장 오래된 실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죽어 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되고 넋이야 있건 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이를 현대시조의 기본 형식 ‘3장 6구 12소절 45자 내외’에 견줘 본다. 초장 첫째 소절에 3자(□□□)가 결략된 것으로 보인다. 보통 구어체에서 자기가 주어가 돼 말할 때 1인칭 ‘나’를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이 몸이’였을 거다. 종장 둘째 소절에도 사자성어 ‘일편단심’ 뒤에 강조조사 두어 자(□□)가 결략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야’였을 것이다. 김흥열 시조시인이 고시조 5천 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를 놓고 검토컨대 초장 중 180여 수가 첫째 소절이 결략된 것으로, 종장 중 적어도 200여 수가 둘째 소절이 4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임선묵이 편찬한 「근대시조대전」 6천여 수 중에도 더러 보인다. 이 시문이 고대 한주가 지은 거라면 1천500년 세월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겪었기에 이런 결략 현상은 오랜 전래 과정 속에서 노래(말)로는 불렸지만 가사(글)로 기록될 때 일부 빠뜨렸을 수도 있겠다.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우리 문자인 한자나 이두 또는 가림토 문자나 언문으로 써진 것이 오늘날 한글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그리 됐을 수도 있겠다. ‘서동요’ 같이 기록으로 남은 향가가 6세기께 발생해 「삼국유사」에 향찰 문자로 써진 걸 볼 때 당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분쟁이 많았던 국경지대 고을에서는 이런 난중 시가가 민간 속에 교류됐지 않았나 싶다. 그때 이 작품도 세간에 불리면서 당시 문자로 써졌을지 모른다.

내 추론대로라면 완벽한 한 수 시조라 하겠다. 단재가 직접 시조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잘 알려진 시조 ‘단심가’를 일제강점기 1931년 여순 감옥의 극악한 환경에서 조선일보에 연재한 사실이나 문학·언어와 한·중·일 역사에 두루 정통한 학해(學海) 거인의 유작이라 더 신뢰가 간다. 어쩌면 우리 겨레와 함께 예부터 전해 온 시조풍의 노래이며, ‘아리랑’처럼 작자 미상의 ‘사랑가’였는지 모른다. 향가기원설을 포함해 신요·민요·여요와 종합적 교류·융화 속에서 태동한 시조! 70여 년 전 사라진 「해상잡록」 원본이 속히 나타나 ‘단심가’의 원형을 보고프다. 짙붉은 동백 곁에 새하얀 앵두꽃이 터진다. 시조 올린다.

- 新사랑가 -

사랑을 사랑이라
빠져버린 그 사랑은
 
사랑을 사랑이라
끝도 없는 사랑 속에
 
하마나
다 녹아설랑
온 천지에 꽃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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