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혜 재능대 사회복지과 교수
윤정혜 재능대 사회복지과 교수

영국 자선지원재단 Charities Aid Foundation(CAF)은 매년 세계 기부지수를 조사해 발표한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2022년도 가장 많은 기부를 한 1위 국가는 미국이나 영국 등 경제대국이 아닌 동남아시아의 섬나라 인도네시아라고 한다. 여전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2위를 기록했으며, 다소 생소한 라이베리아라는 국가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임에도 4위로 조사됐다. 반면 전 세계 10위권 내외 경제 규모를 갖춘 우리나라는 142개국 중 아쉽게도 세계 79위에 머물렀다. 이러한 결과는 경제력이 나눔을 실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우선 요인이 아님을 보여 준다. 필자가 경험한 다음의 몇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1.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오래전 일이지만 마음으로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우연히 받은 전화의 내용은 "경찰공무원 남편이 얼마 전 사망했고, 평소 유지를 받들어 1억5천만 원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20년도 더 된 얘기니 지금 물가로 거의 3억 원이 넘는 큰 금액이었다. 

마침 재정적 어려움으로 지역복지관의 학업중단 청소년 사업이 중단된 사정이 기억났다. 이 사업 지속 지원에 필요한 5천만 원, 남편의 모교 경찰행정학과 후배 지원의 1억 원 의견을 각각 드렸고, 마침내 마법처럼 실행으로 이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그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주방 한쪽에 비닐랩 여러 조각을 말리는 진풍경이 아직도 사진처럼 선명히 남았다. 비닐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평범한 우리 어머니 모습, 그러한 분이 이웃을 위해 마음을 내는 것이었다.

#2. 최근 감동받은 에피소드는 제자들의 이야기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은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인뿐 아니라 친구들의 꿈은 무엇인지,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가려는지를 나누는 좋은 기회다. 평소 따르는 친구들이 많은 한 학생의 발표는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우리 대학에 와서 본인은 성장하는 좋은 사람이 돼 간다며, 사회적으로 안정되는 40대가 되면 반드시 우리 학과에 1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수업을 함께 듣는 20명의 학생 대부분 이처럼 크고 작은 기부를 하겠다는 내용을 버킷리스트에 담았다는 사실이다. 

1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학생은 사회복지사로 취업했고, 한 달치 월급을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가져왔다. 수차례 만류에도 1억 원 기부는 언젠가의 계획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먼저 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학과의 조교 선생도 퇴직하면서 월급을 기부했고, 만학도 한 분도 재학 중 어린 학생들의 도움을 기억하며 장학금을 냈다. 항암치료에 머리카락이 빠진 소아암 환자들의 가발 제작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길러 기부하던 한 학생의 고운 마음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세상 어느 값비싼 보석이 이들보다 더 빛날까?

#3.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젊은 변호사 한 분의 모습도 항상 미소 짓게 한다. 지역에서 열심히 복지 분야에 기여하시고, 소규모 복지기관 운영과 후원에도 관심이 많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역할을 소개했고, 본격적인 활동을 권유했다. 부담도 됐을 텐데 기꺼이 1억 원이라는 고액 기부를 약속하며 인천의 165번째 아너가 됐다. 어린 두 자녀에게 최고의 교육인 나눔의 가치와 의미를 몸소 보여 준 자랑스러운 아빠이기도 하다. 그 기부금 일부는 동구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우리 대학이 함께 예비 사회복지사를 길러 내고 지역사회 안녕을 위한 사업에 소중하게 사용한다. 

잠시 생각해 본다. 훗날 두 아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어떠할까? 두 따님은 장차 어떤 사회인으로 성장할까? 든든한 다음 세대를 기대하게 한다. 

이처럼 보통 시민들의 나눔은 사회적 연대감을 확인케 하고,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는 희망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기부금 총액은 2022년 기준 15조1천억 원으로 이 중 기업 기부는 4조4천억 원이며 개인기부는 10조7천억 원에 이른다. 전체 기부금 중 개인 기부자들의 비율이 확장세로 나타나 우리 기부문화가 점차 성숙해짐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업은 크게 모금과 배분으로 구분된다.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중 시행되는 배분 활동과 달리 모금 활동 대부분은 분위기와 시기의 영향을 받는 겨울에 주로 이뤄진다. 1월 말 종료된 인천공동모금회의 ‘희망나눔 캠페인 사랑의 온도탑’은 가까스로 107억2천만 원의 목표치를 달성하며 101℃로 마무리됐다. 2023년 121℃, 2022년 129℃, 2021년 154℃에 비해 많이 아쉬운 결과다. 

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을 돕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도 "남을 도울 때 가장 덕을 보는 것은 자신이고, 최고의 행복을 얻는 것도 자신이다"라고 얘기했다. 이제 우리도 다같이 나눔으로써 맘껏 행복해질 준비를 하자. 삼월, 봄이 시작됐다. 다가오는 겨울은 인천시민 모두의 마음에 200℃, 300℃의 뜨거움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지금부터 서서히 사랑의 온도탑 예열을 준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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