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 시련과 좌절로 힘들었던 마음의 허전함을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며 영혼의 에너지를 받는다. 그 대상이 부모님일 때 힘을 얻고, 그리운 친구들을 떠올릴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오랜 세월 정분을 쌓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내게 인생의 도움을 줬던 인연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리워진다.

동요 같은 순수한 느낌의 가곡인 심봉석 작사, 신귀복 작곡의 ‘얼굴’은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아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는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아마도 이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얼굴’은 1967년 동도중학교 교무회의에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길어지자 지루했던 생물교사 심봉석이 음악교사인 신귀복에게 노래를 만들어 보라는 제의를 하자 신귀복 선생은 심봉석 선생에게 시를 쓰라고 해 보고 싶은 ‘첫사랑’을 떠올리며 공책에 얼굴을 그리고 즉흥적으로 시를 썼다.

신귀복은 그림과 시를 보고 즉석에서 곡을 완성했다. 심봉석 교사는 가사를 쓸 당시 동기동창이었던 여자친구와 사귀다가 사소한 일로 틀어져서 서로 연락하지 않고 지낼 때였다. 그녀를 생각하며 쓴 시였다.

순식간에 지루한 교무회의에서 탄생한 곡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노래인 ‘얼굴’인 것이다. 이후 그녀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고 9년 만에 첫사랑과 결혼하게 됐다.

KBS 라디오의 ‘노래 고개 세 고개’에서 신귀복이 심사위원으로 있을 때 프로듀서에게 악보를 줬고 성악가들이 노래를 불러서 녹음했는데 방송에 나가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얼굴’은 사회교육 방송 전파를 타고 해외까지 알려져 7천여 통의 편지가 국내외에서 악보를 요청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얼굴’은 대중가수 윤연선이 불러 더욱 널리 알려졌다. 

1974년 대학 연합 노래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윤연선은 우연히 동요처럼 맑고 순수한 ‘얼굴’이라는 노래를 듣고 무작정 작곡자 신귀복 씨를 찾아가 이 노래를 부르게 해 달라고 졸랐다. 신귀복은 윤연선을 음악실로 데려가 손수 피아노를 치며 노래 테스트를 했고, 맑은 포크 어법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기꺼이 허락했다. 

1974년에 ‘얼굴’을 녹음해 앨범에 수록했으나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1975년 지구레코드에서 제작한 두 번째 독집 앨범에 ‘얼굴’이 발표되면서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얼굴’은 그보다 4년 전인 1970년 ‘신귀복 가곡집 1집’을 통해 소프라노 홍수미에 의해 불린 가곡이었지만 윤연선에 의해 포크곡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윤연선은 ‘평화의 날개’, ‘고아’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사랑받았지만 1975년 히트하던 번안곡 ‘고아’가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유신 체제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이후 윤연선은 가수 활동을 접은 뒤 서울 홍대 앞에서 ‘얼굴’이라는 카페를 운영했다. 그녀는 2003년 데뷔 30년 만에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대학시절 결혼을 약속했지만 남자 어머니의 반대로 헤어졌던 첫사랑이 카페를 찾아오면서 27년 만에 재회해 극적으로 결혼했다.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얼굴’은 첫사랑을 기억나게 하는 묘한 노래인가 보다. 그만큼 가사와 멜로디에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인 듯싶다. 

가사를 쓴 심봉석 선생과 노래를 부른 윤연선 가수의 세월을 뛰어넘는 첫사랑과 맺어진 이야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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