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서너 마지기의 땅을 가진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땅을 사랑했습니다. 다른 농부들처럼 그 역시도 봄이 되면 씨 뿌리고 여름이면 거름을 내고 쉬지 않고 김을 맸으며, 가뭄 때는 열심히 물을 뿌려 주는 성실한 농부였습니다. 농한기에는 풀밭으로 소를 데려가 풀을 뜯게 하고 그동안 그는 버들피리를 불었으며, 때로는 그늘 밑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멀리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농부를 땅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측량 기사들이 나타나면서 농부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땅 바로 옆으로 도로가 나자 땅값이 치솟았던 겁니다. 그때부터 성실하기만 하던 농부의 입에서는 늘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어느 날 농부는 괭이를 내던지며 땅에게 말했습니다. "농사는 이제 지겨워서 못하겠어. 장사를 해야겠어. 너를 팔아서 장사 밑천으로 삼을 거야."

이제 서너 마지기가 되던 땅은 절반만 남았습니다. 장사하느라고 밭에는 통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땅은 황폐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땅은 여전히 사랑하는 농부를 기다렸습니다.

수년 후 농부가 불쑥 나타났지만, 예전의 순박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배는 불룩 나왔고, 두리번거리는 눈에는 탐욕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너마저도 팔아야겠다. 차도 사고 장가도 가야 하니까."

이제 쓸 만한 땅은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이라곤 비탈진 언덕 조금뿐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어느 날 억새가 무성한 언덕 밑에 웬 영구차가 한 대 와서 섰습니다. 영구차에서 관 한 개가 내려졌습니다. 그 관은 땅이 그토록 기다리던 사랑하는 농부의 관이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던 땅은 눈을 감고 중얼거립니다.

"결국 이런 모습으로 돌아오고 말 것을 그렇게 큰 욕심을 내고 방황하고 다니다니!"

욕심은 탐욕을 부르고, 탐욕은 더 큰 탐욕을 부추깁니다. 탐욕은 끝이 없을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온전한 주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탐욕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저 농부의 삶과 같은 모습일 겁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 내용 중 일부인데요, 사례 하나를 더 전해드립니다.

승객을 가득 태운 여객선이 강 한가운데서 기관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배가 휘청거리자 배 안은 이내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일부 승객들은 구명정에 올라 탈출을 시도했고, 건장한 남성들은 옷을 모두 벗어 던진 채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승객 대부분이 탈출한 뒤 한 남성이 갑판 위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옷을 여전히 입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몸에는 각종 보석이 휘감겨 있었습니다. 강물에 뛰어든 그는 안타깝게도 물 위로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한참 후 구조대원들이 물속에 잠긴 그를 건져 올렸는데, 그 사람 주머니 속에는 승객의 짐에서 훔친 금덩이와 귀중품들로 가득했습니다. 그것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익사한 겁니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가야 멈출까요. 욕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큰 욕망으로 몸집을 불려 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꿀맛 같던 욕망은 남의 것을 빼앗는 탐욕이 돼 악마가 돼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끝은 파멸이고 죽음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깨닫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젊었을 때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저 건강하고 무탈한 일상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늦게야 알게 된 것이지요.

‘지금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리고 ‘소망하는 그것들이 나와 너 모두에게 유익한 건강한 욕망에서 출발한 것인지 아니면 너를 망가뜨리면서까지 내 것으로 만들려는 고약한 탐욕은 아닌지?’를 자문해 보는 것도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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