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폴 에크만(Paul Ekman)은 거짓말의 사회적 측면,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이유에 대한 연구에 공헌해 ‘거짓말 박사’로 불렸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한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평균 8분에 한 번, 하루 200번쯤 거짓말을 한다고 나타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지만, 이렇게 많은 거짓말을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정신과 의사 조지 서번이 "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한 것처럼 거짓말은 인간 본능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거짓말은 여러 종류로 나뉜다. 사회학자 고프만은 상대방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거짓말을 ‘좋은 거짓말’, 당사자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거짓말을 ‘착취적 거짓말’로 정의했다.

파급 영향에 따라 선의의 거짓말과 악의의 거짓말로 분류하기도 한다. 색깔로 구분하면 하얀 거짓말(white lie)과 검은 거짓말, 회색 거짓말, 노란 거짓말, 파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등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은 사심 없이 좋은 취지로 하는 거짓말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득이 되기도 하는 거짓말이다. 악의의 거짓말은 사욕을 탐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이다. 영국에서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로, 악의의 거짓말을 검은 거짓말로 구분한다. 회색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과 검은 거짓말을 섞어 놓은 거짓말이다. 노란 거짓말은 천진난만한 어린애들이 하는 거짓말이고, 파란 거짓말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하는 거짓말이며, 새빨간 거짓말은 나쁜 마음과 의도로 하는 진짜 거짓말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성당에서 은식기를 훔쳐 도망치던 중 붙잡혔지만, 미러엘 주교는 그의 죄를 묵인하고 은촛대까지 주며 용서한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창문 밖 한 장 남은 담쟁이 잎과 자신의 생명을 동일시하던 폐렴 환자 존시는 이웃집 늙은 화가 베어만이 폭풍우 속에서 밤새 그린 가짜 잎새를 보며 삶의 희망을 되찾는다. 주교와 화가의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이다.

하얀 거짓말은 영화나 소설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미국 하버드의대 Lisa Iezzoni 교수팀은 의사 1천8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 중 55% 이상이 "환자의 예후를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설명한다"고 말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려고 심리치료용으로 하는 거짓말은 선의의 하얀 거짓말이다. Iezzoni 교수도 "때로는 거짓말이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므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의사들의 경우 반드시 부정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먹을 음식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어머니가 배고픈 자녀들에게 "나는 밥을 먹었다"며 자신의 밥을 자녀의 밥그릇에 얹어 주며 하던 거짓말, 바쁜 직장인이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에게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하는 말은 설령 못 지켜도 악의 없는 하얀 거짓말에 속한다. 하얀 거짓말은 거짓임에는 분명하지만 때로는 삶의 윤활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가짜 뉴스’란 언론 보도 형식을 띠고 마치 사실인 듯 유포되는 거짓 뉴스다. 대부분의 가짜 뉴스는 누군가를 속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악의적인 거짓말이다.

가짜 뉴스의 무차별 생산에 개인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적 혼란도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진원지를 찾아 엄벌하기도 어렵다.

AI가 급속도로 발달해 가짜 뉴스는 빛의 속도로 진화할 전망이다.

거짓말은 선의든 악의든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과정을 조작해 표현하는 것으로, 결과가 어떻든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거짓말이 인간의 본능이고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삶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면 선의의 하얀 거짓말로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는 살맛 나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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