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81년 2월 28일, 그간 인천 개항을 둘러싸고 첨예했던 줄다리기가 앞으로 20개월 후 개항하는 것으로 최종 타결됐다. 일본이 인천을 개항하자고 제안한 때가 1879년 6월인 것을 감안하면 1년 8개월 만에 결과였다. 그러나 인천을 개항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알려지자 인천 개항을 반대하는 유림(儒林)들이 목소리가 거세지더니, 3월 25일 이른바 영남만인소를 필두로 하는 ‘신사척사운동(辛巳斥邪運動)’이 전개됐다. 이에 정부는 회유책을 펼치면서도 유배와 참형 등을 동원해 강압적으로 제압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됐던 김홍집이 가지고 온 「조선책략」이 개화의 일환으로 식자들에게 유포됐다. 골자는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으로 향후 조선이 지향해야 될 외교 방략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유림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미국과의 통상조약은 오랫동안 미국과 청, 조선 사이에 물밑 접촉이 있어 왔기에 드디어 1882년 5월 22일 제물포 바닷가 언덕에 천막을 치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연미론을 축으로 하는 고종의 개화정책은 이제 대외정책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 등 전방위로 확대됐다.

그러나 정부의 급격한 개화정책 추진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 중 군사 강국을 위한 일본식 신식 별기군의 조직은 조선의 구식 군대에게 불만을 주고 있었는데 13개월 밀린 급료가 저급한 쌀이었다. 거기에 더해 담당 관리의 오만한 행정이 빌미가 되어 1882년 7월 23일 임오군란이라는 군사쿠테타가 촉발됐다. 구식 군인들은 정권에서 물러나있던 대원군을 필요로 했고, 정권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대원군에게 사태 수습의 전권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공격 목표는 민씨 척족세력과 일본인이었다. 일본공사관의 경비와 직원들은 스스로 공사관에 불을 질러 기밀서류를 태운 후 서울을 탈출했다.

정부와 청(淸)에 파견된 조선 관리들은 청 군대의 파병을 요청, 8월 20일 일본 병력의 2배가 되는 3천여 명의 병력이 조선에 상륙했다. 청은 이미 군란의 배후로 대원군을 지목했고 8월 26일 그를 유인해 납치함으로써 대원군의 재집권 야망은 33일 만에 붕괴됐다. 그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교섭도 빠르게 속개된다. 8월 28일 일본 군함 비예함(比叡艦)에서 시작해 다음날 화도진에서 논의를 거쳐 8월 30일 제물포 일본 군대 임시 군영에서 이른바 ‘제물포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정박 중인 일본 군함은 일제히 축포를 쏘아 올렸다고 한다. 조인 장소는 지금의 인천개항박물관 옛 인천일본제1은행지점 일대였다. 또한 제물포조약은 그간 ‘제물진’이라 불려졌던 이 지역을 ‘제물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상에 알리는 조약이기도 했다.

청이 주도하는 정국에서 맺어진 제물포조약은 일본인 피해 보상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조약 2관에 따라 일본인 사상자를 지금의 답동 부근에 매장하면서 예조좌랑, 인천부사, 화도진별장 등이 삼배의 예를 올려야 했다. 사망한 일본인은 서울에서 7명, 인천부에서 6명 등 총 13명이었다. 훗날 이곳은 1884년 갑신정변의 사상자 일부를 매장해 ‘탁계육군묘지’라 불렀다. 조약과 동시에 당일 강화도조약의 ‘속약(續約)’이 별도로 맺어졌다. 일본은 속약을 통해 공사관 호위를 명목으로 군사 주둔권을 획득했고 개항장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리를 기존 10리에서 50리로 확대할 수 있었다.

청(淸)은 제물포조약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일본에게 빼앗겼던 정치적 우위를 만회하고 나아가 조선을 속방(屬邦)으로 만드는 공작을 진행했다. 조선의 정계는 청국과 일본의 압력이 가중됨에 따라 친청과 친일이라는 입장을 달리하는 세력들의 새로운 대립과 반목이 생겨났다. 반면 일본은 더욱 청국에 대한 경계와 군비 확장, 특히 해군의 확장을 강력히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조선은 이제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자주적 정책을 실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채 깨우치기도 전에 인천 제물포는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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