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시골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였다. 운동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아이가 나를 보더니 서울서 왔느냐고 묻고는 같이 놀자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이라고 했고, 이곳 군 1천500m 중학생 대표로 도에서 개최하는 체육대회에 출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습 삼아 1천500m를 한번 겨뤄 볼 의향이 있는지 넌지시 제안했다. 

육상은 전문이 아니라 멈칫했지만 겨울 내내 스케이팅으로 한강을 쉬지 않고 수십 바퀴씩 누볐던 생각이 떠올라 흔쾌하게 수락하고 달렸다. 속도나 보폭은 알지도 못하고 그냥 그 친구를 따라 가기만 했다. 역시 바람만큼 빠르고, 선수라 다르구나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친구를 앞서기 시작했고 그 친구는 나를 따라 잡으려고, 나는 안 잡히려고 수초간 서로 기를 쓰고 달렸다. 그렇게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며 괜히 미안했는데, 그 친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처음부터 자기가 너무 오버페이스를 했다고 오히려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월트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를 보면 그의 괴기함, 유치함, 과한 야망이 길게 이어진다. 페이스북(메타) ‘마크 저커버그’와 트위터냐 스레드냐로 논쟁하다가 갑자기 격투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장소만 제공해(send me location)"라는 선풍적 용어를 내놓기도 했다. 

책에서는 머스크의 천재성과 부지런한 괴짜를 앞세우며 새로운 리더십 트렌드로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일론 머스크에 대해 특별히 아는 건 없지만, 화성을 탐하고 로켓을 이야기하며 스페이스X와 테슬라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한다는 정도는 안다. 강박증 같은 전문성을 뛰어넘는 천재성으로 승부를 걸기도 한다. 이런 일론 머스크의 리더십이 요즘 시대에 보편적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성공을 통해 보편타당한 일반원리를 도출해 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과정에서 내용으로 이어지는 가치를 보통의 리더십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천재이고 엄청 부지런하며 괴짜다. 그런 그를 뛰어넘을 비책이나 묘안은 없을까? 해답은 기술적 합리성에 대한 인문적 소양이면 될 듯하다. 

천재성의 비범함을 바탕으로 하는 카리스마나 나르시스적 리더들은 자신의 잘못이 분명히 드러나도 절대 인정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다행히 일론 마스크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안다고 한다. 우주발사체 폭발, 테슬라 사고 등 당시 그는 분명하고 겸손하게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다.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수긍하고 대처하는 겸손의 합리성이다. 지극히 동양적인 상호작용인 것이다.

글로벌 3대 지속가능성 공시 중 가장 복잡하고 광범위하다는 유럽 ESG 공시 기준을 살펴보면 ‘지속가능경영보고’의 의무화를 위한 법률 CSRD와 기업이 발표하는 공시 정보 범위와 기준은 ESRS다. ESRS는 CSRD 이행을 위한 구체적 도구다. 결국 이 모두 유럽 기준에 맞춰야 하는 기준이며 주제가 된다.

국내 기업 중 CSRD 적용 대상은 EU 내 2개 연도 연속 순매출액이 1억5천만 유로(한화 약 2천억 원)를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자회사 CSRD 보고 범위에 포함되거나 한 개 지점 개념으로 순매출액 4천만 유로(약 580억 원)를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당연히 우리 기업, 특히 관련 중소기업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그러면서 ‘재무적 중요성’과 ‘영향 중대성’으로 ESRS를 유지토록 권한다.

우리도 이제 ESG를 좀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들여다 봐야 할 때가 왔다. 글로벌 시대 연결된 경제체제는 당연히 기준과 주제에 따라 기업 경영전략이 구축되고 추진된다. 그렇다고 해서 당연하듯 외국에서 제시한 기준, 주제, 문법에만 맞춰 가야 하는가?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 기술, 스포츠가 K를 앞세워 전 세계 만방에 뻗어 나간다. 

아직도 외국 기관의 ‘돈 버는’ 콘셉트에 종속적인 스탠스만 취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듯 받아들이며 매몰비용을 높여 가는 것이 답은 아니다. 참고만 해도 되는 일, 더 높게 이끄는 개념수용이면 될 터인데 무조건적 수용은 안 된다. 일론 머스크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합리성은 동양의 지혜로움(oriental wisdom)에 대한 서양식 종속의식이다. 우리에겐 반만 년의 홍익정신이 있다. 

ESG 전략 역시 기조는 ▶글로벌 ▶녹색 ▶경영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우리의 K-ESG는 불가능이 아니다. "왜 뛰어넘을 생각은 안 하는가?" 차제에 한국형 ESG 추진력이 글로벌에서도 통하는 ‘K-홍익ESG’ 위력을 만방에 떨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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