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조 수필가
박영조 수필가

인생을 ‘만남’이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다. 어려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것이 결정된다. 또 성장하면서 친구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면서 인생의 길이 달라지는 셈이다. 그러나 만남이라는 단순한 일회적 인연이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 만남을 가꾸고, 개척하고 조화를 이뤄 나가는 것이 인생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소크라테스가 악처(惡妻)를 만났기에 위인이 됐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루스벨트가 양처(良妻)를 만나서 대통령이 됐다고 하지만 링컨은 오히려 악처를 만나서 대통령이 됐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만남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 만남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가끔 젊은 부부들, 아니 나이든 부부들까지도 성격 차이로 이혼해야겠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이혼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조화 문제다. 물과 불은 상극된 성질을 가졌다. 물은 차갑고 낮은 곳을 좋아하지만, 불은 뜨겁고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물은 불을 꺼서 죽게 하고, 불은 물을 증발시켜 죽게 한다.

그러나 저들이 만나서 조화를 이룰 때는 참으로 유용한 창조 능력이 생긴다. 가령 부엌에 있는 물과 불의 조화를 보자. 밥이나 요리를 하는데 불만 있다면 이것들은 타 버리고 말 것이며, 반대로 물만 있다면 익지 않아서 요리가 될 수 없다. 부엌에서는 물과 불이라는 상극이 만나 타협과 조화를 이룰 때 맛있고 유용한 걸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영양 있고 맛있는 요리는 바로 그 보완의 조화 속에서 얻은 결실이다. 바늘과 실도 그렇다. 그들의 성격도 전혀 다르다. 전자는 강하고 단단하며 휘기는 어려우나 부러지기는 쉽다. 그러나 실은 약하고 느슨하지만 부러지지 않는다. 이러한 두 상극이 합해져서 조화를 이룰 때 찢어진 것을 싸매 주기도 하고 멋진 패션이 나오게도 되는 것이다. 강한 바늘이 없는 실이나 약한 실이 없는 바늘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이빨은 딱딱해 부러지나 혀는 부드러워 휘어지지만 이것이 합해야 음식을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이빨로만은 밥을 넘길 수 없고, 혀로만은 밥을 씹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 역시 상극의 조화다.

「패러독스 이솝우화」라는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해와 바람이 지나가는 행인의 옷을 누가 벗기나 내기를 했다. 이솝우화에서는 당연히 옷을 벗기는 쪽은 바람이 아니라 했다. 그러나 패러독스에서는 옷을 입히는 내기를 할 때는 해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바람도 그렇게 몹쓸 것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 이곳에서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도 저곳에서는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야구 역사상 베이브 루스는 너무나 훌륭한 홈런왕이다. 714개 홈런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홈런왕인 줄만 알지 스트라이크 아웃을 가장 많이 당한 선수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는 1천330개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해 역시 아웃의 신기록자다. 한편이 그렇게 빛나는 데는 다른 한편은 그렇게 어두웠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명암이 동시에 존재한다. 갈등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이 탄생한다. 인간의 만남은, 특히 부부나 우정의 만남은 각각 다른 성품들 간의 만남이다. 여기서 조화를 이루는 자만이 유용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창조적인 사람이 된다. 장미는 장미대로,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고유의 빛깔과 향기가 있다. 다른 어느 꽃과도 견줄 수 없는 자기만의 타고난 아름다움이 있다.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개성이다. 그러나 자기 개성, 자기 생각도 잘 갈고닦을 때, 그리고 그것이 남과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아름다움의 진가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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