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복잡하고 심신이 피곤할 때 우린 속세를 벗어난 자연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잠시 교외에서 쉬다 오거나 그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등산이나 공원 산책으로 만족해야 될 때가 많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뉴스부터 끊으라"고 조언한다. 세상사 시끄러운 소식을 안 보고 안 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화되는 느낌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번 해 봤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장기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멀리 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결국 며칠 만에 접속한 인터넷 포털뉴스의 타이틀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제 그중 하나를 클릭하고 상세한 기사를 봐야 하는 순간, 과연 우리는 어떤 헤드라인을 선택할까? 2014년 개봉한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세상이 원하는 놀랍고도 자극적인 소식을 발 빠르게 포착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구리선, 철조망, 맨홀 뚜껑 등을 훔쳐 파는 좀도둑 루이스는 어느 날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신속하게 재난 상황을 카메라에 기록하는 나이트 크롤러를 본 것이다. 나이트 크롤러란 특종이 될 만한 사건 영상을 방송국에 판매하는 일종의 ‘범죄 전문 취재진’을 말한다. 어떠한 자격증 없이도 간단한 촬영장비와 자동차만 있으면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 루이스는 곧바로 업계에 뛰어든다. 그리고 소질을 보인다.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해 영상을 찍던 그는 좀 더 극적인 화면 구성을 위해 사고 장소에 있던 물건을 재배열해 확실한 효과를 본다. 이후 그는 거침없이 재난현장을 조작하고 훼손한다. 시신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다음 특종을 위해 현장에서 알게 된 범죄자 정보를 은폐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총에 맞아 다친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유혈이 낭자한 모습을 생생하고 충격적이게 담아내는 촬영과 연출에만 골몰한다. 그 결과 루이스가 포착한 사고 영상은 전에 없이 적나라했다. 

이에 한 방송국 보도국장은 시청률을 위해 루이스의 촬영본을 여과없이 내보내고, 더 자극적이고 쇼킹한 특종 현장을 담아오라고 독려한다. 이제 이 방면에 있어서 전문가가 된 루이스는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하고 세 명의 인턴직원을 뽑을 만큼 성장한다. 그렇게 뉴스는 계속된다.

충격적으로 보일 만한 특종을 위해 현장이나 상황을 조작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개봉 당시 루이스를 연기한 제이크 질렌할을 광기 어린 모습으로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 명의 정신 나간 조작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악인으로 성장하는 그를 도운 건 바로 뉴스를 보는 환경 그 자체에 있음을 강조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법이다. 재난 상황을 흥미로운 볼거리인 양 자극적인 모습으로 담아낼수록 방송국은 관심을 보였고, 그 결과는 시청률이 말해 줬다. 피해자의 고통, 안위, 감정, 인권 등의 가치보다 비극의 중계로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사건·사고 뉴스는 하나의 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결국 이 상황은 어느 한 사람 혹은 한 집단만의 타락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결과임을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섬뜩하게 보여 준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를 영화 속 상황으로만 국한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온라인은 가짜 뉴스와 카더라 통신에 잠식당한 지 오래다. 우리 중 나이트 크롤러 같은 괴물이 성장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작품은 우리의 뉴스 선택 기준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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