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지역사회부장
이강철 지역사회부장

지난 7일이었다. 본사 회의가 있는 날이라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집 앞을 나섰다. 하지만 웬걸, 경충대로(성남나들목 방면)에 들어서자마자 긴 차량 행렬이 도로를 메웠다.

평소 막히는 구간이 아니라서 뚫리길 기다리며 거북이걸음을 하던 중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닌지 궁금해서 경기교통정보앱에 접속했다. 지도상에 정체 구간을 알리는 빨간줄이 성남나들목까지 표시됐는데, 그 연유를 몰랐다. 교통사고도, 도로 공사 안내 표시도 없었다.

이른 시간이었고, 현 도로 상황을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도 몰라 답답했다. 막히는 길을 유독 싫어하는 성품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40여 분을 허비하고 2㎞ 남짓이나 갔을까. 씩씩대며 2개 차로를 가로질러 분당 방면으로 빠져 돌고 돌아 제2경인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부리나케 내달린 고속도로에서도 도로 정비 구간 2곳(청소와 보수)을 만났다. 물론 이 두 곳도 앞서 본 지도상에 그 어떤 표시나 안내가 없었다. 결국 회의에 지각했다.

만약 연락할 곳을 알았다면 당장 전화해서 버럭 화를 냈을까, 이제라도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봐야 하나, 왜 교통앱에 알림 표시가 없었는지 따져야 하나 등등. 이날 한동안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그냥 넘기기로 했다. 이틀 전 악성 민원에 세상을 등진 김포시청 공무원이 떠올라서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용인시 60대 체육교사가 같은 이유로 떠났고, 서이초 교사도 생을 마감했다. 성남중원서 경찰도, 하남시 공무원도, 동화성세무서 직원도, 대전 교사도 그렇게 하나둘 떠나 보냈다.

내일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도 악성 민원에 속앓이하는 공무원이 수없을 테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장에선 말도 안 되는 가지각색 황당 민원이 쇄도한다. 지저귀는 새 소리가 시끄럽다고 벌목이나 나무 치기를 해 달라거나, 음식점 문 앞에 설치된 벌레퇴치기 소음을 해결해 달라는 등의 갖은 요구가 빗발친다. 마치 공무원이 만물 해결사라도 되는 듯 막무가내 생떼를 부린다.

교통민원이 비일비재한 어느 시에서는 교통시설 예정지가 아닌 곳에 거주하는 민원인이 대화 도중 대뜸 거주지를 물었고, 공무원이 ○○동(교통시설이 계획된 곳)에 산다고 답하자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너네 동네만 집값 올리려고 하느냐"고 비꼬거나 "융통성을 갖고 사업성을 해결하라"는 등의 악성 중복 민원을 호소한다. 심지어 시와 연관된 위원회 출신으로 잘 알 만한 사람도 민원이 뜻대로 되지 않자 공무원에게 "철밥통이 요지부동 그 모양이니 시가 의지가 있겠느냐"는 식의 공직사회 전체를 매도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중심이 강한 개인주의나 집단이기주의 같은 산업혁명 시대가 낳은 산물, ‘범죄행위’임이 분명하다.

지난해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공무원 50% 이상이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고, 주된 사유로는 낮은 보수 다음으로 악성 민원 스트레스가 차지했다. 또 84%가 최근 5년 사이 악성 민원을 받았고, 악성 민원을 받은 횟수는 월평균 1~3회가 42.3%, 월평균 1회 미만이 30%, 월평균 6회 이상이 15.6%, 월평균 4~5회가 12.1%로 나타났다.

그제서야 행정안전부도 지자체 등 관계 기관 TF를 통해 악성 민원 대응 방안을 마련·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원론적 수준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깊다.

아직도 일선에서는 장비 용량 한계로 일부 상시 통화 녹음이 이뤄지지 않고, 민원처리에 관계 기관 간 협조체계도 주먹구구다. 전화로 욕설을 해도 전파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모욕죄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등 출동한 경찰의 대응도 한계에 다다른다. 이에 안전요원 확대와 관련 예산 증대, 공공시스템의 통합관리(협조체계)를 비롯해 ‘공공업무 방해’라는 보다 포괄적인 법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공무원은 참고 넘겨야 한다는 공직사회 문화도 해묵은 숙제다. 특히 시민과 자주 접하는 선출직 공무원도 민원처리만 바랄 게 아니라 공무원과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해서 ‘악성 민원=범죄’라는 인식을 뿌리내려야 한다. 얼마 전 민간 콜센터에 전화했다가 들은 안내 멘트가 귓전에 남는다. "상담원(공무원) 모두는 우리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따뜻한 배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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