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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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영국 런던.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계는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무정부 상태에 빠진 국가들은 산업이 붕괴되고 빈부격차가 극대화되며, 급기야 정부군과 반군 사이 내전으로 혼란을 겪는다. 

아비규환 상황에서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언 분)는 기적적으로 임신한 ‘키’(클레어-홉 애쉬티)라는 이름의 여성을 해안가로 데려가려 한다. 그곳에는 인류 문명 복원을 위한 휴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학자들이 기다렸다. 

하지만 정부군과 반군 간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는 한복판, 허름한 건물 속 곰팡이 가득한 매트리스 위에서 키는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순간, "cease fire! cease fire!(사격 중지! 사격 중지!)"라는 외침이 들리며 총과 포탄을 퍼부으며 피나는 살육전을 펼치던 군인들 모두 전투를 멈추며 키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 준다. 

이는 명장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SF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속 한 장면이다. 

영화는 테오가 총에 맞아 죽고, 키 앞에는 인류의 미래를 상징하는 ‘TOMORROW(내일)’이라는 이름의 배가 나타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는 종말을 앞둔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건 새로운 생명뿐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아이가 곧 희망인 사회, 왜 인류가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작금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우리나라의 연간 합계출생률이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비슷하다고 하니 가히 참담한 심정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50년 뒤인 2072년에는 3천600만 명대로 전쟁 직후인 1970년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줄어들 거라 한다. 출생률 저하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위로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합계출생률 1명 이하를 기록하며 2013년부터 11년째 출생률 꼴찌를 이어 가는 건 아픈 진실이다.

1980년대 사실상 산아 제한 목적으로 나왔던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캠페인이 이토록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테다. 아이가 적게 태어나면 노동생산성이 줄어들고 복지와 의료비 등 정부 지출이 급증해 국가재정이 빈약해지는 것은 물론, 주 소비층이 줄어들어 국가경제 역시 활력을 잃는다는 뻔한 소리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오직 ‘사람’이라는 자원 하나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우리에게 출생률 하락은 곧 어두운 미래를 의미하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정부 역시 2006년부터 저출생 정책에만 300조 원 이상을 투입하며 해결하려 했지만 성과는 초라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초저출산·초고령 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이 초저출생 원인으로 지목됐다. 

결국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교육과 부동산, 복지 등 전 분야에서 근본적인 대변혁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 키우기에 경제적 부담이 없도록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아이 키우기가 가능해져야 출생률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출생률 저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높은 경쟁 압력’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안 보인다. 

내 자식에게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을 물려주기 싫다며 자녀 낳기를 꺼려 하는 사람들에게 딱히 마음을 바꾸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학창시절부터 직장생활·사회생활을 거쳐 심지어 결혼마저도 줄 세우기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일부 그릇된 인식이 남아 있는 한 출생률 저하는 막을 수 없다.

청년들에게 아이 낳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세상이다. 4·10 총선이 다가온다. 각 정당은 과연 무슨 낯으로 청년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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