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선비의 방은 좋아하는 것들이 놓이게 마련이고, 이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걸고 주인의 휴식과 정신 수양을 하는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

선비들은 그것들을 의인화해 벗이며 스승으로 삼았다. 물론 번거롭지 않아야 하고 풍미가 있어야 하며 주인의 취향과 잘 맞아야 했다.

선비의 애완품 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문방사우(文房四友), 문방사보(文房四寶)라고도 하는 지필묵연(紙筆墨硯)이다.

그중 벼루는 가장 오랫동안 선비의 벗이었다. 세상에 수많은 벼루가 있어 명품을 하나 얻으면 천하를 얻은 듯했던 것이다. 벼루는 문양, 형태, 재질, 산지, 연지(硯池), 모양,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구별된다. 그 종류도 흙으로 만든 토연 유약을 바른 도연, 돌로 만든 석연, 옥으로 만든 옥연, 나무로 만든 목연, 기와로 만든 와연, 진흙으로 만는 니연까지 다양하다.

중국에는 전해오는 4대 명연(名硯)이 있다. 바로 광동에서 나는 단계연, 안휘의 흡주연, 감숙의 조연, 산서지방의 징니연(또는 홍사연을 친다)이다. 힘들이지 않아도 먹이 곱게 갈리고, 먹물에 윤기가 흐르고, 발묵이 좋아 먹물이 수일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는다거나 옥과 같이 섬세한 광택이 있고 곱고 부드러우며, 붓이 상하지 않아 낮이나 밤이나 품고 싶은 명품들이다. 

이 중 단계연은 벼루 중의 극품으로 당나라 때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가 있고 석질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가히 문인현사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서공연(徐公硯)이라는 벼루는 서씨 성을 가진 선비가 그 벼루를 가지고 과거시험을 치르러 갔는데 날씨가 추워 다른 수험생들의 벼루는 먹물이 전부 얼었지만 서씨 먹물만 얼지 않아 장원에 뽑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단계연은 살아있는 부엉이 눈처럼 생긴 취록색 둥근 석안(石眼)이 들어간 노갱(老坑,수암)을, 흡주연은 금사 무늬를 으뜸으로 친다.

우리나라에는 남포연 중 백운진상석으로 만든 벼루와 북한 평안북도 위안지방에서 나는 위안연을 으뜸으로 친다. 벼루도 8덕(德)이 있는데 온(溫), 윤(潤), 유(柔), 눈(嫩), 세(細), 니(月貳), 결(潔) 그리고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미(美)다.

문방사우는 실용적 가치보다 예술성을 지닌 수장 가치도 귀하다. 특히 고명연(古名硯)이라고 감상벼루에는 그림이나 아름다운 시구, 경구 등을 새겼다. 명(銘)도 지었다. 벼루에 조각은 도잠(陶潛)의 무현금(無絃琴)이나 중광스님의 무공적(無孔笛)과 다르지 않다. 벼루는 날카롭지 못해 둔한 것으로 몸을 삼고 움직이지 못함을 고요함으로 쓰임을 삼는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은둔한 선비들에게 자신을 연마하고 성찰하는 거울일 수도 있었다.

벼루에 물을 담는 곳이 연지(硯池)인데 이를 연해(硯海), 연홍(硯泓)이라 부른다. 깊은 못이었다가 넓은 바다도 되는 셈이다. 이는 벼루를 대하는 선비의 마음이니 작은 돌덩이의 패인 부분이지만 거기에 천지와 바다, 즉 우주의 세계가 담겼다고 느끼는 것이다. 생전의 추사(秋史)선생은 70년 동안 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닳게 했다.

벼루는 몇 점 모아 놓았으나 서예는 참으로 모른다. 서예에 들어서면 꼭 멋지게 써 보고 싶은 글자가 있는데 그것은 세(洗)자와 요즘 들어 부쩍 써 보고 싶은 허(虛)자와 공(空)자다. 몸은 바삐 서산을 넘어가는데 배울 것은 사방에 쌓이고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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